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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李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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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육(李育)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육(李育) 호 : 원숙/모헌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선생의 휘는 육(育)이며 자는 원숙(元叔)이요 호는 모헌(慕軒)이고 본관은 철성(鐵城)이다. 선생은 고려 명신(高麗 名臣) 문정공 이암(文貞公 李 )선생의 후손이며 조선 명재상 용헌 이원(容軒 李原)선생 증손이고 현감(縣監)‚ 이평(李 )선생의 아들이며 쌍매당 이윤(雙梅堂 李胤)선생의 아우이고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선생의 문인이다. 선생은 연산군 초에 진사(進士)가 되고 이어 안기도 찰방(安套道 察訪)에 올라 재임하고 있었다. 1498년(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백형인 쌍매당 이윤 선생과 중형 망헌(忘軒) 이주(李胄)선생이 모두 연류되어 장형에 처해져 유배 되었다. 이에 역시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문인 일뿐 아니라 형 두분이 사화(史禍)에 연류 되었기 때문에 벼슬을 버리고 청도군 화양읍 유등동에 은거하여 학문을 닦고 덕을 쌓아가며 후진들의 교도에 전력하는 한편 옛날부터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던 신라지(新羅池)를 파고 넓혀서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못으로 만들어 유호(柳湖)라 이름하여 연(蓮) 뿌리를 온 못에 심어 연밭을 만들었다. 못 위에 정자(亭子)를 조성하여 송(宋)나라의 염계 주돈이(周敦 )의 연(蓮)을 사랑한다는 말 가운데 연꽃은 모든 꽃 중에서 군자(君子)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인용하여 정자를 군자정(君子亭)이라고 하였다. 이 군자정은 약 450년 전인 중종조(中宗朝)에 초창 하였는데 아마도 백형 중형 두 선생이 신원(伸寃) 되고 복직 된 후일 것이다. 현존건물은 1915년(단기 4248년)3월 10일에 4 간와가로 중창(重創)하고 그 후 몇 차례 중수 중창한 것이며 회당 장석영(晦堂 張錫英)의 미구여사(美句麗辭)의 기문은 이 군자정(君子亭)이 간직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선생은 이 아름다운 연화(蓮花) 호상(湖上)인 군자정(君子亭)에서 학구에 전념하고 시상에 잠기고 시를 읊던 곳이며 만년에는 사방의 현사(賢士) 유생(儒生)들이 찾아들어 도학을 논 하였다. 이 유호연지(柳湖蓮池)의 못물은 넓은 들의 수원이 되어 인근 주민들의 권농에 큰 혜택을 주고 만발한 연화(蓮花)는 군자정과 어울려 선경을 이루니 찾아드는 탐승객이 줄을 잇는다. 이 아름다운 가경이 청도 팔경의 하나이다. 군자정에 서서 염상하면 왕년 선생의 성학도풍(?學道風)이 아로 새겨지고 오늘날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이 아름다움에 선생의 유덕(遺德)을 흠모(欽慕)할 따름이다. 이에 향도사림(鄕道士林)이 강계(講?)를 모아 매년 8월18일에 정상(亭上)에서 봉사 하여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고 있다. 선생은 또 한 청도군 내에 1천수백호의 대 문중을 이루어 경향각지의 요로에 배출한 구름같은 인재를 지닌 명문 철성이씨의 입청도조(入?道祖) 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도주지‚ 청도 문헌고‚ 국사대사전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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