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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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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의립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의립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이의립은 충효로서 세상에 알려진 승증(承曾)의 후예이다. 그도 효성이 지극해서 일찍 양친을 여의고 여묘살이를 하는데 잠시도 묘를 떠나지 않아서 풀이 말랐다고 한다. 상을 다 마치고 탄식하며 나라를 위하는 참다운 길을 찾았다. 그가 나라를 위하는 길로서 택한 것이 "철"과 유황(砧黃)을 얻는 일이었다. 이러한 그의 계획을 안 일가 친척들이 몰려와서 손을 잡고 만류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서 7세에 지근 시가 이미 성인을 무색하게 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재주로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대과에 급제하고 입신출세해서 가문에 영화를 가져 올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공부는 그만두고 철광산을 찾으러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고 한다. 온 집안이 야단일 밖에는. 그러나 의립의 결심은 굳었다. 드디어 그는 철광산을 찾아 길을 떠났다. 먼저 치술령에서 치제를 드렸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어찌 철이 나는 곳이 없겠는가 하고 떠났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막막했다. 영남에서 호남으로 다시 발길을 멀리 북으로 돌려 서북으로 관동으로 10년을 하루같이 철을 찾아 헤맸다. 백두산(白頭山)‚ 묘향산(?香山)‚ 구월산(九月山)‚ 금강산(金剛山)을 돌아 삼각산(三角山)‚ 속리산(俗離山)‚ 태백산(?白山)‚ 소백산(小白山)을 거쳐 지리산(智異山)에 이르는 험한 길을 남김 없이 다 밟았다.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벌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으며 깊은 산속에서 병들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철이 나는 곳이 없었다. 돌고 돌다가 길은 다시 고향 땅에 이르렀다. 울산을 지나 경주로 들어서는 객주집에서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생각하면 너무나 아득하다. 10년 세월을 헤매었지만 앞길은 망막하다. 고향에 들어서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생각에 잠기다가 그만 잠이 들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는 갈길을 손가락질 했다. 날이 밝자 객주집앞의 나무가지에 까치 한 마리가 마치 그를 부르는 것처럼 요란하게 짖어댔다. 마음 속에 느끼는 바가 있어 그는 곧 까치를 따라 나섰다. 까치는 거기에서 멀지않는 달내산(達川山)에 이르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이 곳이야말로 하늘이 계시하는 곳이로구나."고 생각하고 조사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산이야 말고 10여년을 두고 찾아 헤매던 「철이 나는 산」이였다. 그의 나라 위한 일편단심에 하늘도 감동했슴이니라. 천신만고 끝에 철광은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련해서 "쇠"를 만드는 일은 앞으로 넘어야 하는 또 하나의 고난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쉽게 해결을 보았다. 경주와 언양의 중간 반곡(盤谷)이라는 곳에서 비상을 얻게된 것이다. 철광을 녹일 때 비상을 불어 넣어서 "쇠"를 얻는 제련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이래서 많은 쇠를 얻는데 성공한 그는 군기(軍器)를 만드는데 필요한 쇠를 만들어 훈련대장에게 바치고 철환(鐵丸)‚ 연철(鉛鐵)‚ 솥(釜)등도 대량을 만들어 나라에 바쳤다. 백성들의 생활에 가장 요긴한 것 가운데의 하나는 솥이였다. 그는 이 솥을 많이 만들어 무역하고 거기서 얻은 자본으로 유황을 캐는 비용을 마련했다. 일찍 유황이 나는 곳을 발견은 했으나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서 손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황석(黃石)에서 유황을 만들어 이것도 나라에 바쳤다. 이 때가 현종때의 일이였는데 현종께서 친히 이의립을 불러 철을 마련하고 유황을 얻게된 고생담을 듣고 그를 숙천도호부사(肅川都호府使)에 임명했다. 그러나 의립은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으려 하니 왕은 더욱 감탄해서 그를 칭찬하며 구충당(求忠堂)의 호를 내렸다. 그리고 유황은 군용으로 쓰기 위해 나라의 소유로 하고 달내의 광산은 그에게 하사해서 자손이 관리하도록 했다. 과거해서 출세하고도 남을 재주를 가지고 너무나도 어리석은 길을 가려서 나라에 이바지하려고 애 쓴 구충당 이의립…… 이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분들에 의해서 살기 좋고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구충당이 발견한 달내광산은 경주시 외동읍에서 울산으로 들어간 첫 역인 호계에 있다. 구충당의 후손의 소유에서 일본 사람 소유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대한광업회사 소유가 되어 있다. 철과 국력과의 관계를 일찍부터 알아 차리고 철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이의립은 참으로 위대한 애국자이며 선각자였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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