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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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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주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주 호 : 주지/망헌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선생은 조선 연산군 때의 문신으로 자는 주지(胄之)이고 호는 망헌(忘軒)으로 본관은 철성(鐵城)이며 고려 명현(高麗 名賢)인 행촌 이암(杏村 李 )선생의 후예로써 명재상 용헌 이원(容軒 李原)선생의 증손이며 현감 이평(李 )선생의 아들로서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선생의 문인이다. 1488년(성종 19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봉교(檢閱‚?敎)로 있을 때 사관(史官)이 임금 앞에서 엎드려서 말하는 것을 시정 하게 하였고 정언(正言)을 지냈는데 문장에 능하였다. 또한 직언(直言)으로도 저명 하였다. 그 후 장령(掌令)으로 있던 1498년(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자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선생의 문인으로 몰려 진도(?島)로 유배되어 적거(謫居)한 7년 후인 1504년(연산군 10년)에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 선생이 전에 궐내에 대간청(臺諫廳)을 설치할 것을 청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한훤당 김굉필(寒喧堂 金宏弼)선생 등과 함께 사형되어 효수(梟首) 되었다. 중종 조에 신원(伸寃)되어 관직이 복위되고 문집이 있다. 선생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이종준(李宗準)‚ 최부(崔溥)‚ 이원(李 )‚ 김굉필(金宏弼)‚ 박한주(朴漢柱)‚ 임희재(任熙載)‚ 강백진(?伯?)‚ 이계맹(李繼孟)‚ 강혼(?渾)등은 모두 종직(宗直)의 문도로서 붕당을 맺어 서로 칭찬하며 혹은 국정을 기롱하고 시사를 비방했으니 희재(熙載)는 장형 1백 대에 삼천리 밖으로 귀양 보내고 이주(李胄)는 장형 1백 대에 극변으로 부처 하도록 하고 이종준‚ 최부‚ 이원‚ 김굉필‚ 박한주‚ 강백진‚ 이계맹‚ 강혼 등은 모두 장형 80대에 먼 곳에 부처하도록 하되 유형된 자들은 모두 봉수정로간(烽燧庭爐干)의 역군을 시키도록하라는 왕명이 내렸다고 이세영의 이 세영자기(李 世英自記 )에서 말하고 있다. 또한 신영희(辛永禧)의 사우언행록(師友言行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이주(李胄)는 본관이 고성(固城)이다. 어질고 글에 능했으니 곧 용헌선생(容軒先生) 원(原)의 증손이다. 선생이 참형된 갑자사화(甲子士禍)는 1504년(연산군 10년)에 연산군의 어머니 윤(尹)씨 복위 문제로 연산군이 일으킨 사화이다. 이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성종(成宗) 시대에 양성한 많은 선비들이 수난을 당하여 학계는 정지 상태에 놓였으며 뒤이어 언문(諺文)을 학대까지 하게 되어 국문학(國文學) 발달도 침체상태에 빠졌다. 참고문헌 : 인명대사전‚ 국사대사전‚ 도주지‚ 도주문화‚ 해동야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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