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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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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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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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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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이홍우 호 : 계용/모재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광산인(光山人) 근생(根生)의 현손(?孫)으로 자(字)는 계용(季容)이고 호는 모재(茅齋)이다. 일찍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숨은 선비로 조정에서 진천(鎭川)현감으로 천거되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나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여러번 공훈을 세웠으며 (산서지[山西誌]에 기재됨) 당시 공의 딸(?)은 19세의 처녀로 피난중 왜적을 만나 왜적이 그의 손을 잡으니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칼로 스스로 손목을 자르니 왜적이 크게 놀라 달아 났으나 그는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 주쉬목사(州 牧使) 윤형각(尹衡覺)이 제 지내어 말하되 [수사항절(守死沆節)로 유분미민(遺芬未泯)하고 정덕가상(貞德可尙)함은 경전서기래(敬?庶幾來)]라 했다 한다. 묘는 성산면 삼대동(三??)에 있고 미수(眉 ) 허목(許穆)이 비문을 짓고 판서 이원정(李元楨)이 행장을 지었다. 숙종 4년에 공의 백중씨(伯仲氏)와 더불어 회연서원(檜?書院)에 입향(入享)하게 되었고 본군 봉양사(鳳陽祠)에서 뫼신다. 공이 지은 문집이 있으며 공의 따님의 묘는 성산면 관 제동(薺?)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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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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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장르)
- 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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