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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전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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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전삼익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전삼익 호 : 군보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자는 군보(軍保) 본관은 축산(畜産) 영천 명산리 대추곡에서 증호조참판 몽룡(?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민첩함이 남 다르고 기상이 굳건하였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 왜란이 일어나 왜적들이 영천까지 밀어 닥치었다. 공의 부친은 아들 여러 형제를 불러 모아 왜적 멸섬하는데 힘을 다 하라고 명하였다. 아우 삼성과 같이 의병을 모아 병사 박 진을 찾아가서 싸워서 나라를 구출할 것을 다짐하고 그 자리에서 사면장(赦免狀)을 천거하고 돌아와 영천 복성전에 참가하여 선봉에 서서 적병을 무수히 사살하고 그 공으로 1593년(계사년)에 참봉(參?)에 제수되고 다음해에 봉사(?仕)에 을미년에 수문장(守門將) 좌부장(左部將) 훈련판관(訓練判官)을 역임하고 병신년에 첨정(渗丁)에 오르고 봉화현감(?花縣監)으로 부임하여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을 돌보아 어려움과 고난을 오루만져 구제하고 용기를 북돋우어 생업에 종사케 하니 공의 정성에 감복하고 돌아온 뒤에 백성과 관원들이 비를 세워 추모하였다. 정유년에 군자정이 되고 무술년에는 통훈대부에 오르고 갑진년에는 원종공(元宗功)에 녹훈(錄勳)되었다. 을사년에 울산 동래의 소모별장(?耗別將)이 되어서 8년간을 두 진(鎭)을 넘나들면서 군비를 정돈하여 왜란때 흩어진 변방의 상처를 회복하고 군정(軍?)을 보살피는데힘을 다하였다. 어릴 때부터 담용이 크고 영민한 재질이 있어 학문은 물론 무예를 수련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1621년 병부(兵符)의 고관이 본 고을을 순시할 때 말 타기와 활 쏘기를 하였는데 기마 솜씨는 가히예술이었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명중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부군(府君)은 크게 기뻐하며 추천 하였다. 그 이듬 해 1622년에 무과에 급제 등제하였고 훈련원(訓練院)참군(參軍)겸 봉사(?仕)가 되었다. 술용만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므로 그곳을 비어하기 위하여 정략장군으로 부임 하였는데 장군의 무용을 전해들은 왜구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1646년에는 황해도(黃涇道)평산부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하동부사가 되었다. 1648년에는 울산부사 옹처현천 성보수군만호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만호로 재직 할 때는 해변에 성을 축조하고 병기를 수리하며 군사를 정예군으로 훈련시켜 7년간 변방 방어에 진격을 다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효종(孝宗)은 위풍이 당당하고 용맹스런 장군이 적을 방어하고 섬멸하는 공을 크게 칭찬하며 상으로 군관표리일습과 활등을 하사하였다. 금호읍 약남동 출신.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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