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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정난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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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정난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정난손 호 : 백춘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동래 상세설명 자는 백춘(伯春)이요 본관은 동래니 직제학 사(賜)의 맏아들로 용궁현 포내(예천군 풍양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뛰어나고 심정이 범인과 달라 일찍이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아 예·악·사·어·서·수에 익숙했다. 약관에 서울로 올라가 아버지를 모시고 이름난 선비들과 사귀니 글이 크게 진보 되어 큰 선비라 이르더니 1450년(세종 32년) 성균관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진취할 뜻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성리학을 전공하여 명망이 더욱 빛나는지라 조정에서 서로 추천하여 세조의 특채로 뽑혀 집현전 저작(著作)·박사(博士)와 수찬관을 겸하여 여러 해 있다가 사헌부 감찰로 옮기고 경주 판관을 지나서 금산 군수가 되어 백성들을 어진 풍속으로 교화했다. 이어 내직으로 내자시 첨정·사섬시 부정·사복시정으로 승진하고 그 청렴‚ 정직함이 알려져 성종조에 사간원 사간을 제수했다. 사헌부 집의로 승진하여 법대로 사사로움 없이 법강을 업숙히 밝혔으며 선산도호부사로 지극히 다스려 백성들이 돌비를 세워 송덕했다. 성종이 승하하여 릉산역사를 감독한 공로로 다시 당상에 승진되어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배명하였으나 곧 사양하고 물러나왔다. 연산군이 예조 참판으로 불러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지조를 지켰다. 1457년(세조 3년)에 신 숙주가 "정 난손은 문학에 고명하고 또 사람됨이 온량 단정하여 유림의 스승이니 집현전에 벼슬로 돕게 함이 옳다"하니 임금이 "내 또한 이름을 들었도다" 하더니 임금이 사정전에서 강론을 들을 때 공(公)이 주역의 이치를 강론함이 밝고 통달하여 주역 한 질과 궁내의 술을 내리고 칭찬하였다. 공의 문학이 유림의 으뜸이 되고 평생을 순실(純實)로 근본을 돈독히 하고 착한 덕향이 세상에 드날리고 매양 사람을 대함에 충성으로 가르쳐 상하가 즐거이 복종하고 천문지리와 음양 복서를 크게 통하여 많은 선비들이 다투어 사모하고 조정이 무겁게 존대했다. 참고문헌 : 한국인명사전‚ 동래정씨 족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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