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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정영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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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정영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정영방 호 : 경보/석문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동래 상세설명 공의 자는 경보(慶輔)요 호는 석문(石門)이며 본관은 동래요 진사 원충(元忠)의 손자로 매오(梅塢) 영후(榮後)의 아우다. 우복 정 경세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찬하고 1605년(선조 38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이 즉위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단념하고 은퇴하여 전원을 벗삼으며 학문으로 평생을 보냈고 당시에 뛰어나 인구에 회자됨이 많았다. 공은 용궁현 포내(지금의 풍양면 별실)에서 나서 일찍 지포(芝圃)에서 살았고 병자 호란 후에는 진보 임천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군자의 풍모를 지니고 우복의 문하에서 공부할 때 침식을 잊으면서 공부하여 스승도 탄복하여 큰 그릇이 되리라고 했다. 형이 병들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하며 맛있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미리 보내고 형제가 한몸 같이 지냈다. 또한 성품이 근엄하여 처신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젊어서 술을 가까이 하였으나 스스의 타이름을 받은 뒤로는 평생을 금주했으며 평소에 말하기를 "세상 사람이 공명(功名)을 중히 여기고 본심을 잃으니 안타깝다. 그것은 이심(利心)의 유혹때문이니 잘못이다"라고 했으며 집안에서 과거 보려는 이가 있으면 막지는 아니하나 권하지도 아니했고 스승 우복 선생이 공을 조정에 천거하려 하매 굳이 사양하니 스승이 웃으면서 "내 벌써 짐작했네" 하더란다. 공의 시 한 수를 옮겨 본다. 우복 문하에서 동문 수학한 신 집에게 보낸시(1580년 - 1639년) 남포 바다 떠 다니며 마름 캐다가 강 위에서 이별한 지 오래로구려 불현듯 그대 그리워 노래하건만 꽃잎이 다 지도록 임은 다시 아니 오시려나 이 얼마나 친구를 그리워함이 간절하냐. 문집 세 권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완담사에 모셨고 후진을 양성하던 지포 강당이 지보면 도장리에 지금도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석문집‚ 용군현지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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