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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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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최동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최동규 호 : 취오/지재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화순(和順) 출생시기 : 1673년(현동 14) 상세설명 선생은 화순(和順) 최씨로 1673(현동 14)년에 태어났다. 자(字)는 취오(聚五)요 호(號)는 지재(止齋)다.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선생은 8세에 십구사략을 읽고 10세에 사서(四書)에 능통하고 사예(詞藝)에 일찍 통했으나 20세에 향해(鄕解)에 꺾이고 드디어 무술을 연마했다. 1696(숙종22)년 무과에 급제하고 여러 직을 거친 뒤 1708(숙종 34)년에는 훈련주부(訓練主簿)로서 오명항(吳命?)의 인정을 받을만큼 장재(將材)였다. 1728년 무신난(戊申亂: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운봉(雲峰)에서 동지를 규합 창의하여 당시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의 좌독장(左督將)이 되어‚ "평생에 한 번 죽어 나라에 보답하려 했는데 이제 죽을 자리를 얻었다."고 하여 그 충정을 보였다. 선생은 행군하여 죽산(竹山) 장항령(?項嶺)까지 나가 육박전을 벌여 적을 무찌르다 무지(拇指:엄지)를 잃기도 했다. 선생은 모든 공을 윗사람에게 미루고 자기 공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으며 호남의 적이 거의 토벌되자 안음(安陰) 적을 치게 되었는데 화살과 돌에 맞아 병으로 더 종군할 도리가 없었다. "목숨을 다해 부끄러움이 없으려 했는데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통탄했다 한다. 선생은 크고 장한 뜻을 다 펴지 못하고 원통한 나날을 보내다 1731(영조7)년 5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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