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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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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최승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최승로 활동시기 : 삼국시대 상세설명 최승로는 고려초기의 대학자이며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의 6대 임금 밑에서 벼슬을 했으며 고려의 문치주의적 제도를 확립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의 정치체계가 완성된 것은 제6대 성종부터라고 해야겠는데 모든 정치를 유교주의에 의해서 하도록 했다. 이러한 정책은 모두 최승로의 주장으로 이루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승로가 태어난 해는 신라에서 포석정(鮑石亭)의 비극이 있었던 경애왕(景哀?) 4년(A.C.927)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원보라는 벼슬에 있었던 최은함이였는데 늦도록 아들이 없었다. 은함은 중생사(衆生寺)의 관음보살 앞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더니 아들을 낳아 승로를 얻게된 것이다. 이 중생사의 관음보살이 기적을 낳는 보살인데 중국에서 우리 나라를 동경해서 건너온 유명한 화공이 만든 것이다. 그 화공의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장승요(張僧繇)라고 하는 설도 있다. 관음보살에 빌어서 낳은 최승로가 석달도 채 못되어서 포석정의 변이 일어난 것이다. 후백제의 견훤의 습격을 당해서 서울은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관리들은 더욱 위험했다. 은함은 하는 수없이 어린 승로를 안고 중생사에 찾아와서 관음보살에 맡기도록 했다. 그리고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관음상의 대좌밑에 감추고는 울며 울며 그 자리를 떠났다. 적병이 물러가고 다시 평화로운 날이 돌아오는데 반달이 걸렸다. 몇일만 피한다는 것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절망만 남았다. 은함은 절망에 어두워진 마음을 안고 중생사로 왔다.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감추어둔 부처님의 대좌밑을 열어 보고 그는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은함은 놀라운 사실에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반달만에 왔는데도 아이는 살아있지 않는가! 그것도 목숨만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결은 금방 목욕한 것처럼 부드럽고 젖냄새가 입가에 남아있으며 생긋생긋 웃는 무심한 얼굴은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기적! 이 놀라운 기적! 관음보살이 점지해 주셨고 보름동안이나 젖을 먹여 보호하고 길러준 아이‚ 이 아이가 최승로다. 관음보살의 아들이라고나 해야 할 최승로이다. 이러한 최승로가 불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면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는 오히려 불교의 폐단을 우려하고 유교 교리에 의해 고려왕조의 통치원리를 확립했으니 우리는 최승로의 행적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그 공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아니 겨우 열두살에 고려 왕건 태조 앞에서 「논어」를 강의해서 태조를 감탄시켰다. 태조는 신동 승로를 귀여워하고 장래에 큰 기대를 걸었다. 대대의 임금들이 그를 특별히 대우한 것도 태조의 이와 같은 은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뛰어난 학식과 탁월한 정치적 안목은 대대의 임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정치의 잘잘못을 지적하는데 사사로운 정을 섞지 않았으며 규탄할 것은 규탄하고 시정해야 할 것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의견을 올렸다. 정치개혁에 대한 그의 의견을 간추려 6대 성종 원년(A.D.982)에 왕에 올린 것이 유명한 시무28조(時務二十八條)이다. 시무28조는 지금 22조만 전하고 있으나 태조에서 경종까지 5대의 정치를 놓고 거리낌없이 비평하고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최승로의 시무28조 가운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불교와 유교에 대한 정책이다. 그가 성종에게 시무28조를 올린 그 이듬해에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朗平章事)에 임명되자 시대의 폐단을 바로 잡는데에 힘을 기울였고 다시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으로 임명되어 정치 수완을 발휘했다. 그의 주장으로 거국적인 불교행사인 팔관회(八關會)‚ 연등회(燃燈會)등도 폐지되었다. 그의 주장‚ 그의 수완으로 고려 왕조의 성격을 규정지웠슴을 생각할 때 신라의 영광이 끝이 없슴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관음보살에 빌어서 태어난 최승로‚ 위난을 당해서는 관음보살의 젖을 먹고 그 보호아래 생명을 연장한 최승로‚ 그가 불교의 폐단을 염려하고 억불의 정책을 썼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우리는 최승로에서 참다운 지성(知?)이라는 것이 어떠한 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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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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