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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 신행선사비 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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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단속사 신행선사비 탑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관람후기(0) 단속사 신행선사비 탑본 한자명칭 斷俗寺神行禪師碑拓本 국적/시대 한국(韓國)-신라(新羅) <813년> 재질 지(紙) / ? 용도 문화예술(文化藝術)-서화(書?) 크기 30.5x19.1cm 소장품번호 본관(本館)-002551-000 공유하기 이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斷俗寺)에 있던 신행선사(神行禪師) 탑비의 탁본이다. 이 비는 813년(헌덕왕 5)에 세워졌는데‚ 비는 오래전에 없어지고 탑본만이 전한다. 이 탁본은 1면 6행의 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래 비는 모두 29행이며 63열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옅은 황색 바탕에 무늬 있는 종이 표지의 장정에 왼쪽에 ″靈業書(영업서: 영업이 쓰다)″‚ 오른쪽에 ″斷俗寺神行禪師碑銘 新羅憲德五四年 癸巳立 晋州智異山(단속사 신행선사비명‚ 신라 헌덕왕 54년 계사에 건립‚ 진주 지리산)″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으며 모두 32면으로 되어 있다. 신행은 30세가 넘어 불가에 입문하였으며 중국으로 건너가 공부하였다. 779년에 입적하고 34년 후에 비가 건립되었다. 유희해(劉喜涇)의 『해동금석원(涇東金石苑)』에 의하면‚ 비의 높이는 5.6척(170cm)‚ 너비는 2.5척(76cm)이었다고 한다. 비문에는 신라 통일기에 초기 선종사를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가 담겨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단속사 신행선사비 탑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1유형)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museum.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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