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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도 제3차 통일고문회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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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99년도 제3차 통일고문회의 개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1999-06-29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 조사결과   1. 사건 개요 o 지난 6.20 금강산 관광중 북한에 억류되었던 민영미씨(여‚ 35세)가 6일만인 6.25 석방되어 속초항을 통해 귀환하였음.   o 정부는 이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통일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합동으로 조사반을 구성하여 6.26∼28간 민씨가 입원중인 서울중앙병원에서 남편 송준기(36세)씨 입회하에 억류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하였음.   o 조사결과‚ 민영미씨는 - 6.20 14:00경 금강산 구룡폭포를 관광하던중 북측 「환경감시원」(남자‚ 50대)에게 "빨리 통일이 되어서 우리가 금강산에 오듯이 선생님도 남한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귀순자 전철우와 김용이 TV 프로에도 나오고 잘 살아요"라는 등의 발언을 하였다가 북측에 억류된 이후 - 6.20∼6.25간 장전항 인근 컨테이너 및 온정리 소재 금강산여관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 북측의 강요와 회유에 따라 「환경감시원」에게 「귀순공작」을 벌였다는 요지의 사죄문을 6.24 작성해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되었음. 2. 억류 경위 o 민영미씨는 99.5월말 이웃에 사는 최○○ 부부가 금강산 여행을 간다는 말을 듣고 금강산관광을 결심하였으며 중소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남편은 사업때문에‚ 장남(초등학교 5학년)은 학업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고 차남(6세)만 동행   o 6.19 17:00경 차남 송종훈(6세) 및 최○○ 부부와 함께「풍악호」를 타고 동해항을 출발   o 6.20 08:00경 북한 장전항에 도착‚ 관광조장의 안내를 받으며 같은조(가반 4조)에 편성된 20여명과 함께 구룡연 코스로 이동   o 6.20 14:00경 구룡폭포를 관광하던 중 민씨가 북측 「환경감시원」에게 다가가 폭포 인근 칼바위에 새겨진 미륵불(彌勒佛)의 미(彌)자와 감시원의 나이 등을 질문하면서 대화를 시작 - 관광조장으로 부터 북측 감시원과 대화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으나 당시 금강산 관광으로 마음이 들떠 있었던데다 처음 접하는 북한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말을 건네게 되었다 함   o 대화과정에서 민씨가 먼저 "빨리 통일이 되어서 우리가 금강산에 오듯이 선생님도 남한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귀순자 전철우와 김용이 TV프로에도 나오고 잘 살아요"라고 말하자 북측 감시원이 갑자기 관광증을 압수했으며‚ 10분후 또 다른 여자 감시원이 나타나 「사죄문」과 벌금 100불을 부과 - 사죄문은 "금강산 관광을 와서 법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여 100불을 낸다"는 내용으로 북측 감시원이 불러 주는대로 작성   o 이후 북측 감시원이 관광증을 주겠으니 따라오라 하여 관광조장과 함께 출입국 관리사무소까지 가자 권총을 휴대한 군인 4명이 20:00경 민씨를 북측이 임시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에 수용 - 본명의 아들(6세)은 동행한 이웃 주민이 데리고 풍악호에 승선 3. 조사 상황 【 컨테이너 조사 】   o 6.20 20:00 경부터 6.22 13:00 경까지 장전항 인근 컨테이너에 수용 - 컨테이너속에는 책상 4개‚ 의자 5개‚ 간이침대 1개가 비치되어 있었으며 쌀밥과 사과‚ 음료수 등이 제공되었으나 음료수만 마셨다함   o 6.21 02:00 경 조사관 3명이 들어와 귀순유도 발언을 시인하는 내용의 「사죄문」작성을 강요하였으나 민씨는 "단순히 말을 걸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내용으로 작성(A4 크기 2매 분량)하여 3회에 걸쳐 제출 - 조사관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왔느냐.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3년이고 10년이고 맛을 봐야 한다"고 위협하면서 서류뭉치로 책상을 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으나 폭행은 없었다함   o 6.21 10:00 경 컨테이너 옆에 있는 화장실로 가던 중 현대 직원들과 함께 승용차에 탄 아들이 손을 흔들며 엄마를 부르는 것을 목격하고 만나게 해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거절   o 이후 하루 종일 조사를 받은 후 22:00경 극도의 불안감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조치와 함께 링거주사를 맞고 6.22 01:20경 까지 수면   o 6.22 06:30 경 가족생각을 하다가 또 다시 쓰러져 응급처치를 받은 뒤 오전중 조사관으로 부터 본인 및 남편의 학·경력‚ 직장‚ 가족사항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으며 북측은 이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 - 민씨는 남편과 본인의 신상 및 가족사항은 물론 자신의 사회활동 등에 대해 소상히 답변하였다고 함   【 금강산여관 조사 】 o 6.22 13:00 경 금강산여관으로 이동‚ 6.25 귀환시까지 3층 객실에 수용 - 객실은 7-8평 크기로 침대 2개‚ 의자 4개‚ 냉장고‚ TV 등이 비치되어 있었고 객실 내에는 여자 2명(4명이 2교대)‚ 복도에는 남자 1명 및 여자 2명이 상주 감시 - 식사는 매끼 쌀밥에 반찬 5가지 정도(생선튀김‚ 계란찜‚ 생오이‚ 김치‚ 고추장 등)를 제공하였으나 거의 먹지 못했으며 호칭은 "민영미씨"‚ "영미씨"‚ "동무"‚ "아줌마" 등을 번갈아 사용   o 6.22 저녁 여관 인근에 있는 온천을 다녀왔으며 6.23부터 6.24까지 평양에서 왔다는 조사관 2명이 처음부터 다시 조사 - 남한에서 누구의 지시를 받고 공작을 벌였는지 - 가족사항‚ 학·경력‚ 직업 등 신상관계 - 금강산 관광중 환경감시원과의 대화내용 및 저의 - 귀순공작에 대해 작성해 볼 것 - 연설을 해 본 경험이 있는지‚ 공산당에 대해서 웅변을 해 볼 수 있겠는지 - 앞으로 10년을 썩어야 하는데 죄를 인정하겠는지 등을 중점신문 4. 사죄문 작성 o 6.23 08:00 경 평양에서 온 조사관 2명이 - "속 마음을 털어놓고 진실을 얘기하자. 핏줄을 나눈 조선사람인데 죽이기야 하겠느냐" - "더이상 말하지 않으면 법대로 처리하겠다. 애기 아빠와 아들이 보고싶지 않느냐" 며 하루 종일 회유와 협박을 반복하다가 - "오늘은 푹 자고 내일 다시 할테니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한 후 24:00경 신문 종료   o 6.24 09:30부터 12:00 경까지 「사죄문」을 자발적으로 작성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민씨는 이를 계속 거부 - 중식후 심신이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조사관이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면 집에 갈 수 있다"며 회유   o 17:00경 조사관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죄문」(A4용지 2매반 분량)을 주면서 일방적으로 "사죄문 초안이니 읽어 보고 베껴 쓰라"고 강요하였고 자포자기 심정에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작성하여 제출   <「사죄문」요지> · 금강산 관광중 "선생님(감시원)도 남한에 가서 살아요"라고 말한적이 있음 · 공화국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여 벌을 받아 마땅한 데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반성하며 사죄드림 o 6.25 07:00경 조사관 2명이 전날 작성한 「사죄문」이 잘 되었다면서 「사죄문」말미에 작성 일자(1999.6.24)와 작성자(민영미)를 쓰게한 다음 무인‚ 서명토록 요구 5. 석방 경위 o 6.25 17:10경 함께 있던 여자 감시원으로부터 "통일되면 꼭 만나자. 가을에 가족들과 한번 더 놀러와라" 라는 말을 듣고 곧 귀환하게 될 것으로 느꼈으며   o 약 10분뒤 조사관 2명이 들어와 "기분이 어떠냐. 아픈 데는 없는가. 떠날 준비 서둘러라"며 석방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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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 저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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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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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unikore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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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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