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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길-지난 55년의 역사와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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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미래로 가는길-지난 55년의 역사와 남북관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05-11-01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코리아타임스 창간55주년기념 코리아타임스 창간55주년기념 11.1일자 에세이 기고 미래로 가는 길 - 지난 55년의 역사와 남북관계 통일부 장관 정동영‚ 10.25 청년시절 역사학도였던 나는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런 독재시절에 유신반대 시위중 유치장에 갇혔을 때 역사학계에서는 절대 금기시되는 역사적 가정법에 잠시 빠져들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지적 유희의 차원에서 "만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인류의 역사가 다시 쓰여졌을 것"이라고 말했겠지만‚ 당시 나는 "만약 우리의 위정자들이 우리의 미래를 좀더 생각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그 후 흘러간 역사에서 'IF'란 무의미하며‚ 미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역사학도에서 언론인을 거쳐 정치에 입문해 통일부 장관으로 일하는 지금까지‚ 나는 대학시절에 읽은 토인비의 '역사란 무엇인가'중 한 구절을 경구처럼 되새기고 있다. "훌륭한 역사가라면 그 것(미래)에 관해서 생각하든 안하든 간에 미래를 뼛속 깊이 느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라는 질문도 제기해야 한다." 잠시 역사를 거슬러보면‚ 올해는 광복 60주년이자 우리민족의 일제 식민비극이 시작된 '미-일 밀약' 100주년이기도 하다. 루스벨트에 의해 중재된 이 밀약에서 일본은 1905년 필리핀 지배권을 미국에게 넘기고‚ 그 대신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우월적 지배를 승인받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중에 루스벨트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반면 한국은 약소국의 전철을 밟아 5년 뒤‚ 일본에 합병되고 말았다. 그 후 우리는 단 한차례도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불행한 처지로 밀려났다. 1945년8월15일 열광과 환희의 광복을 맞았지만‚ 그 날로 바로 분단이 시작되어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립과 긴장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역사의 아웃사이더였던 우리가 얼마 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처음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 9월19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6자회담에서 주도적인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 이른바 '9.19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운명과 미래를 개척하는 자긍심을 발휘하였다. 이는 바로 우리 정부의 노력일 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건강한 시민의식‚ 자부심‚ 민주주의를 성취한 국민으로서의 자신감이 바탕이 된 것이다. 우선‚ '9.19 합의'는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합의들을 우리 주위의 열강들과 함께 공동성명의 형태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합의로 인해 우리를 둘러싼 외형적 냉전 구도‚ 즉 남북간 적대의 잔재‚ 북·미의 적대‚ 북·일간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빠른 속도로 와해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한 내적인 냉전구도‚ 즉 남남갈등은 여간 사라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최근 강정구 교수의 대북 역사관을 둘러싸고‚ 아직도 전체주의적 사고에 젖은 일부 세력들이 남남갈등을 조장하면서 냉전의 망령을 주술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통일부 장관으로서 강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고‚ 그 논리전개도 대단한 비약이 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할 사람은 국민중에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살인혐의로 구속된 한 피의자에게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 나는 싸우겠다"고 말하면서‚ 피의자의 인권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24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이 재현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색깔론에 진절머리가 난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냉전의 부활을 원치 않으며‚ 밝고 희망찬 미래를 바랄 뿐이다. 어떻게 보면‚ 강교수 사건은 미래로 향하는 한반도의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포말이라는 생각이다. 이 거대한 역사의 강물의 흐름 속에서 그 포말은 곧 진정될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우리 내부의 냉전 구도가 해소되면 우리에게 밝고 희망찬 미래가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 사실‚ 북녘땅은 우리의 현실이면서 미래이기도 하다. 북에 지원하는 것은 북을 돕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녘땅에 가보면 그 풀 한포기와 나무 한그루도 남쪽과 다를 바 없다. 다 그게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살았고‚ 곧 언젠가는 같이 살아야 할 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능력 있으면 북녘의 도로이고 철도이고 항구이며‚ SOC와 인프라도 깔아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북한에 비료와 식량과 인도적인 지원 등을 위해 지난 4년 동안 연간 평균 5억5000만 달러를 지원했으나 지난해 저개발국 원조액 4억4000만 달러를 합쳐도 우리의 빈곤국 지원액은 9억9000만 달러에 불과해 OECD 30개국중 최하위의 수준이다. UN은 문명국가의 한 척도로서 적어도 GDP의 0.7%를 빈곤국에 지원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순수한 외국에 대한 지원은 0.06%쯤 되고‚ 북한지원을 포함해도 겨우 0.1%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북핵문제 해결을 주도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제안한 200만kW 대북송전계획의 비용을 포함시킨다고 해도 우리의 대외지원규모는 여전히 인색한 수준이다. 며칠 전‚ 나는 주한 신임미국대사 버시바우 대사의 예방을 맞은 자리에서 우리 한반도에 의미 있는 통계숫자 2가지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하나는 오늘날 유엔가입국 191개 국가중 140개 국가가 1945년 이후 주권국가로 등장했는데‚ 지난 60년 동안 자신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뿌리내린 나라‚ 그 민주주의를 토대로 적어도 1인당 국민소득을 1만5000달러 이상의 경제 국가로 만든 나라는 두 나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스라엘과 한국이다. 또 하나‚ 올해 말이 되면 6.25 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에 남한 국민으로서 북녘땅을 밟은 사람이 17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2005년 한해는 남북관계사에서 또 하나의 물꼬가 트인 해로‚ 1년 방북자 10만명 시대를 활짝 열어제킬 것이다. 여기에 금강산 관광객 30만명을 합하면 방북자는 40만명이 달할 것이다. 또 내년이면 개성공단에 300개의 공장이 들어가 북한인 근로자수는 현재 4700명에서 십만명으로 늘고‚ 남쪽 근로자 1만5000명이 같이 일하게 된다.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자주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야말로 사실상의 통일상태에 도달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바로 며칠 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조정한 것은 바로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평화번영정책과 북핵문제 해결의 진전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우리는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맞이하기까지 힘들고 가파른 큰 산을 넘었다. 아직도 넘고 가로질러야 할 적지 않은 고개와 시냇물이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염원과 성원이 있기에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정부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우리 스스로 주도적으로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합심해 노력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회환에 찬 역사적 가정법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때 우리가 좀더 미래를 준비했더라면.....‚"이라는 역사적 가정법이 더 이상 우리 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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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저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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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연계 URL
https://www.unikore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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