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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문양] 분청사기인화문사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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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한국의문양] 분청사기인화문사리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4-10-31
분류(장르)
미술
요약정보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같이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바르고 그 위에 회청색의 유약을 입혀 구워낸 사기이다. 분청사기가 번조된 시기는 대략 14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해당되며 조선전기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우리 도공들의 납치와 요지의 파괴로 분청사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분청사기는 백토를 입히고 문양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상감(象嵌)‚ 인화(印花)‚ 조화(彫花)‚ 박지(剝地)‚ 철화(鐵畵) 귀얄‚ 덤벙기법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분청 사기장들은 일일이 새기는 상감법 대신에 문양이 새겨진 도장을 꾹꾹 눌러 손쉽게 상감의 효과를 거두는 인화문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이 대접에도 인화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이 사리합은 뚜껑과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 윗면 중앙에는 연꽃문을 둘러싼 구슬이음무늬가 있고‚ 바깥쪽으로는 흑백상감의 연꽃문이 배치되어 있다. 연꽃문 외곽으로는 빗방울무늬가 나타나고 그 사이에 흑백상감의 4개의 원이 배치되어 있다. 뚜껑의 측면에는 구슬이음문이 인화되었다. 합과 뚜껑이 만나는 부분에는 번개무늬를 백상감하여 돌렸다. 그 아래로 연꽃무늬를 인화하여 배치하고 다시 그 아래로 연판문을 흑백상감하여 돌렸다. 연꽃문은 고대 인도에서 전래되어 불교 미술의 상징적 도안으로 사용되어 왔다. 수많은 꽃 중에서 유독 연꽃만이 꽃과 열매가 동시에 피어나는 독특한 특성을 지녔는데‚ 이러한 연유에서 연꽃은 고대로부터 생성과 관련되는 의미를 부여받았다. 이와 같은 생명 창조의 상징은 불교에서는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 모두 사후에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나 서방정토에서 왕생한다는 연화화생 신앙으로 표출되었다. 또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 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는데 그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연못에 물들지 않는 속성에 기인하고 있다. 연꽃의 이런 속성을 불교의 교리와 연결시켜 초탈(超脫)‚ 보리(菩提)‚ 정화(?化) 등 관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편 연꽃은 민간 신앙에서는 다산(太産)의 의미로 상징되었다. 그 이유는 연꽃의 강한 생명력 때문으로 중국의 민간 신앙 가운데 ‘연생귀자(連生貴子)’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는 귀한 아들을 연이어 많이 낳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연꽃의 ‘연(連)’과 연생의 ‘연(連)’이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서로 상통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연꽃의 독특한 생장 특성을 이용해 다산의 의미로 승화시킨 것이다. 연꽃은 불교만의 전용 소재는 아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전부터 연꽃은 도교와 유교에서 군자(君子)의 상징으로 비유되었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는 자신이 노래한 「애련설(愛蓮說)」에서 “꽃 가운데 국화는 속세를 떠난 군자요‚ 모란은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군자(君子)라 생각한다”고 찬양하였다. 이와 같이 진흙탕에서도 물들지 않고 청아하게 피어나는 연꽃을 유교에서는 덕망 높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겼던 것이다. 구슬이음문은 일종의 테두리 문양으로 크고 작은 구슬형태의 원무늬가 연속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구슬이음문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기에서 수당시대에 성행하였던 것으로 고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보다 일찍이 유행하여 일반적으로 그 기원을 서아시아에 두고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ulture.go.kr
분류(장르)
미술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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