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흑혜

추천0 조회수 47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흑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사대부(士??) 남자들의 마른신의 하나로 편복(便服)에 신었다. <발달과정/역사> 신발은 발을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신는 족의(足衣) 로 신분계급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신발은 북방 계통의 목이 긴 화(靴)와 남방계통의 목이 짧은 이(履). 혜(鞋)로 나눌 수 있다. 삼국시대 귀족들은 `이`를 신었고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화 와 이를 병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혜가 대표적인 신발이었으며‚ 화는 상류층의 남성이 신었다. 우리나라의 신은 성별‚ 신분‚ 직업‚ 복장에 따라 재료‚ 형태를 달리하여 그 종류가 다양하다. 가죽제품으로는 석. 흑피화(黑皮靴). 협금화(狹金靴 . 목화(木靴). 백화(白靴). 흑피혜(黑皮鞋)‚ 발막신. 징신 등이 있으며‚ 주로 상류층에서 신었다. 짚신으로는 왕골짚신. 부들짚신‚ 고은짚신. 엄짚신이 있고‚ 미투리에는 삼신. 절치. 탑골치. 무리바닥. 지총미투리 등이 있다. 비단으로 만든 운혜(雲鞋)와 당혜(唐鞋)는 상류층의 부녀자용이었고 사류(士類)의 평상화(平上靴)로 태사혜(?史鞋). 흑혜(黑鞋)가 있다. 종이를 재료로 한 지혜(紙鞋)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었고‚ 목제(木製)로는 나막신이 있는데 남녀노소 모두 비올 때나 습할 때 신었다. 1880년대부터 구두를 신기 시작하였고‚ 1920년대에 고무신과 운동화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모양은 태사혜(?史鞋)와 같으나 태사문(?史紋)이 없다. 검정 우단(羽緞)으로 울을 만들었으며 앞뒤축 중심선에 흰 실로 선(?)을 만들었다. 밑창에는 앞바닥과 뒤꿈치 둘레 부분에 원형(圓形)의 징을 박았다. <참고문헌> 온양민속박물관‚《한국의 민속》‚ 1980. 고려대학교박물관‚《복식류명품도록》‚ 1990. 유희경‚《한국복식사연구》‚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국립민속박물관‚《한국복식2천년》‚ 1995.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5.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