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연봉등잔대

추천0 조회수 52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연봉등잔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등잔을 적당한 높이에 얹어 놓을 수 있게 한 받침대. <발달과정/역사> 고구려 쌍영총 고분 벽화에 고배형등(高杯形燈)이 그려져 있고‚ 신라시대의 토기로 만든 다등식등잔(太燈式燈盞)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일찍이 이러한 등기들이 발달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도경》에 궁중에서 등잔이나 초를 필요에 따라 바꿔 올릴 수 있는 광명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등잔 전용의 등경과 초 전용의 촛대로 분리되어 발달되었다. 넓적한 하반에 3-4개의 거치형 단급(段級)이 있는 기둥을 세운 후‚ 필요한 높이의 단에 등잔걸이를 걸고 그 위에 등잔을 얹어 사용하였다. 단급(段級) 없이 상반부에 등잔을 얹도록 만든 것을 따로 구별하여 등가라고 부르고‚ 놋쇠나 백통으로 만든 고급품을 유경(鍮 )이라고 한다. 등잔 밑에는 우각형(牛角形)‚ 유방형(乳房形)‚ 타구형(唾具形)의 기름받이를 달아 심지에서 떨어지는 불순물을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등경은 상하귀천 없이 가장 애용된 형태였다. 청동‚ 철‚ 놋쇠‚ 나무를 주재료로 만들었는데‚ 궁중이나 양반층에서는 장인이 제작한 금속제 등경을 사용했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자가(自家)제작한 목제등경을 사용했다. 크기는 하반경 20cm 내외‚ 높이 70cm 내외가 일반적이었으나‚ 120cm 이상 150cm 미만의 대형도 있어 제사용으로 사용되었다. 하반경 10cm 내외‚ 높이 20cm 내외의 소형 등경은 주로 부엌 벽에 걸어 사용했던 것으로 부엌등 이라고 한다. 받침대인 하반에는 불을 켜는데 소용되는 성냥 등을 두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통나무를 깎아 섬 모양의 불판을 만들고 꽃잎을 음각 시문 하였다. 불판 중앙에 꽈배기 모양으로 꼰 간주(竿柱)가 세워져있고 그 위에는 2겹의 연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피어날 듯이 조각되었다. 그 안에 등잔을 넣도록 제작되었다. 불판의 일부에 금이 가서 갈라졌다. 연꽃 봉오리 부분도 일부가 갈라졌다.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불의 민속》‚ 1996. 고려대학교박물관‚《목공예명품도록》‚ 1990. 금오민속박물관‚《옛 사람들의 살림살이와 세간》‚ 2004.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5.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