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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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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청자상감완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청자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로 만든 형태 위에 철분이 1-3% 정도 들어있는 장석질(長石質) 유약(釉藥)을 입혀 1250-1300℃ 정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내어 자화한 자기의 일종을 말한다. 청자상감완편이 출토된 선원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692-1번지와 그 일대에 위치하며 현재 사적 제 2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에 도읍하며‚ 당시 최고 집권자였던 최우의 원찰이자 대몽 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1245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후 선원사는 법보를 봉안한 국찰로서 또 국사를 배출한 선찰로서 발전을 거듭하였고‚ 충렬왕 때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될 만큼 규모가 웅대했다. 그 후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선원사는 태조 7년(1398) 대장경판이 한양의 지천사로 옮겨진 후‚ 아무런 기록 없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사찰이 되어 버렸다.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 학술조사단에 의해 최초 조사되었으며‚ 강화군의 요청에 따라 동국대박물관에서 조사단을 발족하여 2001년까지 6년 동안 약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출토된 총 2‚296편의 자기편 중에 고려청자가 94%에 달했으며‚ 이 중 사발‚ 대접편이 64%를 차지하고‚ 접시편이 25%를 차지하고 있어 기형별로는 사발과 대접‚ 접시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내경된 낮은 다리굽으로 큰 규석눈받침으로 번조하였다. 규석받침이란 굽의 안바닥‚ 즉 굽의 안쪽으로 땅에 닿지 않는 면에 작은 차돌 알을 받치는 것으로 접지면에 유약을 씌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를 크게 높이게 된다. 처음에는 어린이 송곳니 크기의 규석을 작은 원판에 3-4개 박아서 그릇의 굽 안바닥에 받쳐 굽는 방법을 썼으나 나중에는 원판을 사용치 않고 굵은 규석만 받치는 방식이 이용된다. 구연은 살짝 내만하였으며 내저면은 둥글게 손질되었다. 회백색 태토에 회녹색유약이 얇게 시유되었다. 외면에는 약화된 당초문대와 국화문‚ 연화문 등이 흑백상감되었으며‚ 내면에는 당초문대‚ 운문대‚ 보상당초문‚ 봉황문‚ 여의두문 등이 흑백상감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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