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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탁합본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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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고탁합본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이 고탁합본첩은 낭공대사(朗空?師)의 비문과 일연 스님이 비인 보각국사비 고탁을 모아 놓은 것이다. 낭공대사는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그는 832년에 태어나 916년에 입적하였다. 그는 가야산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화엄의 묘의(?義)를 배웠다. 847년 복천사(福泉寺) 관단(官壇)에서 구족계를 받은 뒤 굴산사(堀山寺)의 통효대사(通曉?師)를 찾아가 수년 동안 수행하였다. 그는 870년 당나라로 가서 법을 깨닫고‚ 오대산 화엄사에서 신인(神人)을 만났고‚ 중국의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참방하고 조계(曹溪)에 들어 육조탑에 예배하였다. 귀국 후 그는 효공왕과 신덕왕의 부름을 받았고‚ 선종을 중시하였다. 그는 석남산사(石南山寺)에서 입적하였다. 954년 봉화군 태자사(?子寺)에 김생(金生)의 집자로 된 비가 세워졌다. 시호는 낭공대사(朗空?師)이고 탑호는 백월서운(白月栖雲)이다. 보각국사비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一然) 스님의 비이다. 일연(一然) 스님은 1206년에 태어나‚ 1219년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의 고승 대웅(?雄)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여러 선문(禪門)을 방문하고 수행하였고 1227년 승려의과거시험인 선불장(選佛場)에서 장원인 상상과(上庠科)로 급제한 뒤 포산(包山)의 주지로 있으면서 참선에 몰두하였다. 1237년 삼중대사(三重?師)가 되고 1246년 다시 선사(禪師)를 더하였고‚ 1249년 정안(鄭晏)의 청을 받고 남해의 정림사(定林社)로 옮겨와 이 절을 주재하며 대장경을 주조하던 중 남해의 분사대장도감(分司?藏都監)의 작업에 참여하였다. 1256년 윤산(輪山)의 길상암(吉祥庵)에 머무르면서 ????중편조동오위(重編曹?五位)????를 지었고‚ 1259년 대선사에 올랐다. 1261년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江華島)로 가서 선월사(禪月社) 주지가 되어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하였다. 그 뒤 경상북도 영일(迎日)에 있는 오어사(吾魚社) 등을 다니며 설법과 강론을 폈고‚ 1277년(충렬왕 3) 청도(?道) 운문사(雲門寺)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1281년 몽고군의 일본원정 때‚ 왕을 따라 경주(慶州)에 머무르며 왕에게 법설을 강론하였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았다. 그해 노모의 봉양을 위하여 귀향하였다가 이듬해 경상북도 군위(軍威)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하고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하였으며‚ 1289년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보각국사비는 일연스님이 입적한 6년 후인 1295년에 세워졌는데‚ 민지(閔漬)가 비문을 짓고 높이 6尺(척)‚ 폭 3尺(척) 5寸(촌)의 ?黑色(담흑색) 점판암으로 되어 있다. 글자는 ?羲之(왕희지)의 글씨를 集字(잡자)하였다. 일연 스님의 시호는 보각(普覺)‚ 탑호는 정조(靜照)이다. 이 고탁첩은 앞쪽은 낭공대사비의 탁본이고 뒷부분의 3면만이 일연스님의 보각국사비의 탁본으로 되어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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