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서당화상비편

추천0 조회수 68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서당화상비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서당화상비는 신라 중기에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선 원효스님의 비로소 1968년 분황사 북쪽의 농가에서 발견되었다. 원효스님은 신라 중기 승려로 아명은 서당(誓幢)‚ 속성은 설씨(薛氏)로 나마(奈麻) 담날(談捺)의 아들이며‚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그는 29세 때 출가를 결심하고 집을 헐어 초개사(初開寺)를 짓고‚ 648년(진덕여왕 2) 황룡사(皇龍寺)로 들어가 각종 불전을 섭렵하며 수도에 정진했다. 34세 때 구법(求法)을 위해 의상(義湘)과 당(唐)나라로 떠났으나 중도에 귀환‚ 10년 뒤 다시 떠났다. 가는 도중 잠결에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뒤 깨달음을 얻고 되돌아왔다. 장안 거리에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네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라고 노래해 무열왕이 이를 듣고 홀로 된 요석공주(瑤石公主)와 짝을 지어 주어 설총을 낳았다. 실계(?戒)한 그는 스스로 소성거사(小?居士)·복성거사(卜?居士)라 하며 속인 행세를 했다. 광대 복장으로 지내며 ????화엄경(華嚴經)????의 이치를 쉬운 내용으로 담은 ?무애가?라는 노래를 지어 민중 속에 퍼뜨렸다. 그는 불교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하였으며‚ 많은 저서를 썼으나 총 100여 부 240권 중 20부 22권만이 현존한다. 특히 ????대승기신론소(?乘起信論疏)????는 중국 고승들이 즐겨 인용하였고‚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은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 대저술이다. 그는 학승(學僧)으로서 뿐만 아니라 민중교화승으로서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정토교(?土敎)의 선구로서 분파된 불교이론을 하나의 진리로 종합‚ 정리하여 세운 화쟁사상(和諍??)은 가장 독자적인 사상체계이다. 이 비는 서당화상비 전체에 있어서 왼쪽 상단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서당화상비는 1914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때에 발견된 비편은 서당화상비 전체의 오른쪽 아랫부분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당화상비는 비문의 내용을 통해 8세기 말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본 박물관 소장 비편일 발견되면서 이 비가 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비는 원효대사의 손자인 중업(仲業)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비문의 찬자는 알 수 없다. 비문의 글씨는 2㎝ 정도의 행서로 모두 33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