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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행정골사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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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선행정골사리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2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1923년에 입적(入寂)한 이선행의 사리를 기념하기 위한 비(碑). <유래 및 발달과정> 돌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을 석비(石碑)라 하며 네모난 형태의 입석은 비(碑)‚ 원형은 갈(碣)이라고 부르며 총칭해서 비갈(碑碣)이라고도 한다. 비문의 내용에 따라 탑비‚ 묘비‚ 신도비‚ 사적비‚ 송덕비 등으로 나누어진다. 중국 주대부터 시작되어 석비의 전성기인 한 대를 거쳐 당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수(?首)와 제액(題額)‚ 비신(碑身)‚ 귀부(龜趺)등을 갖춘 전형적인 석비형식이 완성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는 자연석 또는 모가 난 돌에다 비문을 새겼으나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중국 당대의 석비형식에 따라 네모난 대좌에 귀부를 안치하고 그 위에 비좌와 비신을 차례로 얹은 다음 맨 끝 부분에는 이수를 장식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고승(高僧)의 탑비를 비롯하여 신도비와 묘비도 많이 세워졌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1923년〔癸亥年十二月十五日(계해년십이월십오일)〕에 입적(入寂)한 이선행의 사리비〔居士李善行頂骨舍利碑(거사이선행정골사리비)〕이다. 뒷면과 좌측면에 걸쳐 법사(法師)와 거사(居士)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간기(刊記)에 따르면 1962년에 세워진〔佛紀二九八九年壬寅三月日立(불기이구팔구년임인삼월일입)〕것으로‚ 당시 이정상(李定相) 스님이 주지였고‚ 화주(化主)로서 이태준(李泰俊) 스님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2. 김원룡 감수‚『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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