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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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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지팡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걸음을 도우려고 짚는 막대기. 단장(短杖)이라고도 한다. 노인·신체장애인·등산가·여행자 등이 사용하며‚ 때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권위의 상징으로 또는 호신용으로도 이용하였다. 목공예는 나무를 이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기예(技藝) 및 그 제품의 총칭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각종 건물과 가재도구의 대부분을 나무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낙랑고분의 유물을 통하여 고구려의 목공예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으며‚ 5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풍속적인 내용이 많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수레와 평상(平床) 등의 목제품을 엿볼 수 있다. ≪삼국사기≫ 잡지(雜志)를 보면‚ 도성의 도시행정을 관장하는 전읍서(典邑署)에 사(史) 16인과 목척 70인을 둔다고 하였다. 여기서 목척이란 곧 대목을 가리키는데‚ 그들에 의하여 국가적인 조영 업무가 수행되었다.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그릇들은 소형에 속하며 호비칼로 깎아 다듬었고 한결같이 나무(木心)에다 직접 칠을 입혔다. 반면에‚ 안압지 출토품은 몇 가지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즉‚ 이 시대는 동력화한 갈이틀〔鏃機〕이 보급되어 있었으나 더욱 복잡한 공정으로 견실한 제품을 만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모양이나 합모양으로 꾸미는 데 가장 효율적인 시공법이다. 조선시대는 유학사상을 정치 및 사회이념으로 삼아 풍요롭고 사치하는 풍조가 제약받게 된다. 그리고 억불정책(抑佛政策)에 따라 사찰 수공예가 대폭 위축받게 되어 기술의 쇠퇴와 단절을 가져오기도 한다. 조선시대 목공의 미는 일체의 인위적인 장식성‚ 인위적인 조형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간결한 선(線)‚ 명확한 면(面)‚ 그리고 목재 자체가 가지는 자연목리(自然木理)의 미로써 하나의 통일체를 만들어 낸 점에 특징이 있다. 이러한 지적은‚ 신라·고려 공예가 귀족적임에 반하여 조선시대의 공예는 민중적이라는 시각에서 조명한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 네이버 백과사전(http://www.naver.co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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