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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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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등잔받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등잔은 기름을 연료로 하여 불을 켤 수 있도록 만든 그릇.그 재료에 따라 목제·토제·대리석·백자·사기·놋쇠·철제 따위의 등잔이 있다. 여기에 한지·솜·마사(麻絲) 등으로 심지를 만들어 기름이 배어들게 하여 불을 켠다. 삼국시대의 발굴품 중에서 각종 형태의 등잔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신라의 유물로는 토기로 된 다등식와등(太燈式瓦燈)이 있고‚ 백제의 것으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자등잔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옥등잔이라고도 하는 대리석등잔이 있었다. 등잔이 미의 극치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통일신라의 연등회와 고려의 연등회·팔관회 등에 불을 밝히고 발원하는 신앙행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백자등잔은 나무등잔걸이나 철제 또는 놋등경 어디에 얹어두어도 조화를 잘 이루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백자기름받이를 걸쳐두면 한층 조화를 이룬다. 우리의 전통적인 등잔은 심지를 그저 그릇가에 대어서 불을 켜거나 발심지를 하여 그릇의 중간에 오게 하여 불을 켜지만 석유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바로 기름에 불이 닿으면 연소가 되기 때문에 뚜껑을 겸한 심지꽂이가 따로 붙어야만 하였다. 이것을 우리 기호에 맞게 고안된 등잔이 많이 나왔다. 민족항일기에는 가스를 연료로 하는 간데라도 있었다. 그러다가 1890년경에 처음으로 서울에 전기불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석유나 가스‚ 전기에 의한 조명이 있었지만‚ 최근까지도 제사나 고사 등에는 식용기름에 발심지를 해서 불을 켰다. 조도를 높이려면 심지를 두개 또는 그 이상으로 하여 불을 켜면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쌍심지라 한다. 그러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부분 양초를 애용하고 있어 전통의 등잔은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정방형의 나무로 만든 상자 중앙에 팔각형으로 나무를 깎아 붙여 등잔을 놓도록 만들었다. 나무 상자의 네 모서리는 연귀짜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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