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우난계

추천0 조회수 115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우난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목공예(木工藝)는 나무를 이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기예(技藝) 및 그 제품의 총칭.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각종 건물과 가재도구의 대부분을 나무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풍토의 제약으로 인하여 목재로 활용되는 수종(樹種)은 그다지 풍족하지는 않으며‚ 가장 흔하게 쓰이는 소나무는 건축목재로서 적당하지 않다. 느티나무·느릅나무·들메나무·포구나무 등은 무늬 좋은 목재로‚ 가래나무·은행나무·오동나무·피나무 등은 판재로‚ 참죽나무·물푸레나무·버드나무 등은 야물고 질긴 목재로‚ 먹감나무·배나무·박달나무 등은 특수용재로 사용된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전나무·분비나무·이깔나무 등이 요긴하게 사용되었으나 근세에는 희귀 수종이 되었고‚ 화류·흑단·침향목 등은 삼국시대부터 엄격히 규제된 수입 목재였다. 일본에 흔한 가구재(家具材)도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것이 많다. 따라서‚ 각기 자기 고장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목공예가 발달하였다. 우리 나라의 목공품은 건축에서와 마찬가지로 못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숨겨진 내부의 결구(結構)를 튼튼하게 짜는 데 특징이 있는데 대나무 못과 부레풀을 주로 썼다. 그것은 나무의 성질을 이치에 맞게 적용하는 오랜 경험의 결과이다. 목공품은 그 쓰임새와 놓이는 장소에 따라 가변성(可變?)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목공예의 재질 중 대나무는 한반도의 남쪽에서만 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재료가 될 수 없지만‚ 버들가지와 싸리채는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 아주 보편적인 기물에 속한다. 특히 버들가지 제품은 우리 나라만의 사연을 간직한 채 오랜 동안 요긴하게 사용되어 왔다. 삼국시대 우리 나라의 선사시대 목공예는 거의 자료가 없어 살펴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것을 통하여 비로소 접근이 가능해진다. 낙랑고분의 유물을 통하여 고구려의 목공예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으며‚ 5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풍속적인 내용이 많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수레와 평상(平床) 등의 목제품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목공예는 출토품이 없고 사서(史書)의 기록 또한 단편적이다. 다만‚ 전세품(傳世品)으로 유존하는 나전칠기가 10여 점 있어서 목공품의 외장기법을 엿볼 수 있고‚ 팔만대장경의 조판(雕板)을 통하여 나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목공의 미는 일체의 인위적인 장식성‚ 인위적인 조형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간결한 선(線)‚ 명확한 면(面)‚ 그리고 목재 자체가 가지는 자연목리(自然木理)의 미로써 하나의 통일체를 만들어 낸 점에 특징이 있다. 이러한 지적은‚ 신라·고려 공예가 귀족적임에 반하여 조선시대의 공예는 민중적이라는 시각에서 조명한 것이다. 목공예의 괄목할 만한 것은 궁궐이나 사찰 등에 비치되어 있으므로 사가의 가구를 중심으로 언급하게 된다. ≪산림경제≫나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 등은 세간 치레의 격조를 가르치고 있으나‚ 실제 현존하는 유물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부닥치게 된다. 우리나라의 목공은 일정한 격식이나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대범하고 소탈하게 제작함으로써 우리 나라 목공예의 개성과 미가 굳어진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