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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깨끼저고리(꽃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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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하늘색 깨끼저고리(꽃자수)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양팔과 몸통을 감싸며 앞을 여며 입는 형태로 된 한복의 윗옷. 깨끼 겹저고리는 훤히 비치는 얇은 옷감을 두 겹으로 하여 곱솔로 바느질한 여자 저고리를 말하며‚ 여름에 주로 입는다. 주로 얇고 고운 모시나 견직물인 항라‚ 노방‚ 생고사‚ 준주사 등 발이 곱고 풀기 있는‚ 속이 비치는 얇은 옷감을 이용해 두 겹으로 지어 입었다. 그 가운데서도 무늬 없는 노방을 겹으로 만들면 투명한 옷감이 겹쳐서 자연스럽게 물결 무늬가 생기므로 더욱 우아하고 품위 있게 보인다. 무늬가 없는 감일 때는 안팎을 같이하고‚ 무늬가 있는 감일 때는 안감으로 무늬가 없는 감을 사용한다. 시접 없이 가는 솔기의 선만 나타나도록 만들기 때문에 바느질이 어렵고 까다로워 예전에는 잘 입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여름용 나들이옷이나 예복으로 많이 입는다. ‘깨끼’라는 말은 안팎 솔기를 곱솔로 박아‚ 솔기를 곱게 오려내어 겹옷(안감을 두지 않고 겉과 안을 맞추어 지은 옷)을 짓는 일을 말한다. 보통 옷을 만들 때는 바느질한 다음 시접을 그대로 두는 것이 보통이나‚ 깨끼옷은 바느질선을 한번 박아서 꺾은 다음 최소한도로 시접을 가늘게 박아서 시접을 모두 자른 다음 다시 꺾어서 박는다. 바느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만들기 어려운 섬세한 바느질법의 하나이다.그러나 투명한 옷솔기마다 가느다란 선만 보이는 더없이 정교하고 우아한 옷이다. 깨끼옷은 겉감과 안감을 같은 감으로 만드는데 다른 천으로 만들 때는 질과 신축성이 같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옷은 뜯어서 늘인다든가 재생할 수 없으므로 평상복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저고리의 길이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점차 짧아진다. 지금까지 조사된 저고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530년대와 1560년대의 유물이다. 이것은 이미 띠가 필요 없을 만큼 짧아져 띠 대신 고름이 달려 있고‚ 각 부의 구성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후로 여러 점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어 조선시대 저고리의 변천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1600년대의 저고리는 길이가 60∼80㎝이고‚ 1700년대에는 45㎝ 정도‚ 1800년대에는 35㎝ 정도‚ 1900년대에는 22㎝ 정도로 짧아졌다. 여자저고리는 줄곧 단소화(短小化)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경향은 조선시대 중기·후기에 더욱 가속화되어 그 길이가 가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지고‚ 직배래를 이룬 소매는 벗을 때 소매를 뜯어내야 할 정도까지 이르러 요사(?邪)하다는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저고리가 짧아짐에 따라 각 부의 형태도 작아졌고‚ 특히 고름은 가늘고 짧아졌다. 반면‚ 회장은 겨드랑이에서 소매를 따라 나아가는 등 더욱 강조되었다. 이와 같이 저고리가 짧아진 현상은 엄청나게 큰 머리모양‚ 풍성한 치마와 어울리기 위한 것으로‚ 그 당시의 해이하고 화미(華美)하였던 사회풍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단소화의 경향은 말기에 약간의 반전기미를 보이다가 개화기에 들어 1920년대까지 지속된다. 그 뒤 1930·1940년대에는 저고리의 길이와 각 부가 커지는 장대화(長?化)의 경향이 나타난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ncyKorea)" 네이버 백과사전(http://www.naver.co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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