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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문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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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파주문월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석진(趙錫晉)이 1910년대에 그린 파주문월도(把酒問月圖) <작가설명>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 1853-1920)은 황해도 옹진출신으로 아버지 용찬(鏞燦)과 어머니 문의박씨(文義朴氏)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도화서화원으로 산수화와 어해화(魚蟹畵)를 잘 그렸던 할아버지 정규(廷?) 밑에서 학문과 그림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28세가 되던 해인 1881년 신식무기의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領選使)일행의 제도사(製圖士)로 발탁되어 톈진(??)으로 건너가 1년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 귀국 후 도화서에 들어가 조선 최후의 화원이 되었다. 영춘군수로 있던 1902년에는 고종과 이왕전하의 어진도사(御眞圖寫)에 안중식과 함께 화사(畵師)로 선발되어 화명을 드높였다. 1908년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의 촉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후진양성에 힘을 쏟기 시작하였다. 특히 1911년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이 설립되자 안중식과 함께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 근대의 전통회화를 주도하게 되는 화가들을 많이 배출시켰다. 1919년 민족서화가들을 중심으로 서화협회(書畵協會)를 결성‚ 초대회장 안중식에 이어 제2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나 1920년 사망하였다. <작품설명> 그는 여러분야의 그림을 잘 그렸으나 특히 산수화와 어해화에 능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1900년대 이후인 말년의 작품이기 때문에 화풍의 변천과정을 논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체로 산수화에서는 조선 후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던 남종화풍에 토대를 두되 북종화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강직한 화풍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인 정규의 화풍을 이어‚ 즐겨 다루었던 어해화들은 대상의 생동감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필치의 활력보다는 정확성에 더 심혈을 기울여 꼼꼼하고도 날카로운 필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은 중국 당나라때 시인인 이백(李白‚ 701-762)의 시 <파주문월(把酒問月)>에서 소재를 빌려 그린 것으로 유유자적한 여유와 음풍농월하는 낙관적인 생활자세가 표현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靑?有月來幾時 푸른 하늘에 달이 있은지 얼마나 되었는고? 我今停杯一問之 나 이제 술잔 멈추고 한번 물어나 보자. 今人不見古時月 지금 사람은 옛 적의 달 못 보지만‚ 今月曾經照古人 지금의 달은 전에도 옛 사람들을 비췄으리라. 古人今人若流水 옛 사람 지금 사람 모두 다 유수 같고나‚ 共看明月皆?此 밝은 달 함께 보고 이렇게 느꼈으리. ?願當歌對酒時 오직 노래하고 술 마실 때만은‚ 月光長照金樽裏 달빛아 오래오래 술통 속 비춰 주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조석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EnCyber두산세계대백과-이백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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