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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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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화조도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당이 그린 화조도 10폭으로 이루어진 병풍. <유래 및 발달과정> 화조화는 당나라때 하나의 화과로 독립되었으며‚ 당말오대(唐末五代)때는 화법이 정묘해지기 시작했다. 오대(五代)때는 화조화의 두 대가‚ 즉 서희(徐熙)와 황전(黃筌)이 있어 중국화조화의 쌍벽을 이루었다. 서희는 수묵을 위주로 거친 화조화를 그렸고 황전은 채색을 위주로 부려(富麗)한 그림을 그려 서체(徐體)와 황체(黃體)라는 이름으로 중국화조화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북송말의 휘종(徽宗)은 더욱 화려하고 섬세한 화조화를 그려 화명(畵名)을 길이 남겼다. 중국화조화는 크게 사생파(寫生?)와 사의파(寫意?)로 나누어진다. 사생파에는 황전파와 서희파가 있는데‚ 황전파는 변문진파(邊文進?)‚ 여기파(呂紀?)‚ 육치파(陸治?)가 화맥을 잇고‚ 서희파는 서위파(徐渭?)‚ 진순파(陳減?)가 화맥을 이었다. 또 사의파에는 임량파(林良?)와 일부 진순파 화가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화조화도 삼국 이래 꾸준히 발전하여왔는데‚ 화단 전체 조류에 따라 서체와 황체가 교대로 성행하였으나 중국 화조화처럼 화려하고 섬세하지는 않았다. 욕교반졸(欲巧反拙)이라는 사상이 철저하였던 한국인의 회화관 때문에 농채는 보기 드물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중국화조화에 비하여 세부묘사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조금은 거칠면서도 자연스럽고 생명력이 넘치는 맛을 주는 것이 우리나라 화조화의 특징인 것이다. 화조화를 그릴때 돌과 꽃과 새를 함께 그리는 것은 만고불변의 돌을 통하여 냉정하고 숙연한 아름다움과 생기발랄한 청기(?氣)를 함께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화조화에는 동양인의 장수‚ 복록‚ 우수(偶數)‚ 궁합‚ 범신(汎神) 등 각종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작품설명> 이 그림은 10폭의 사의화조화로 이루어진 병풍그림이다. 수묵으로 전통적으로 즐겨 그렸던 소재인 매화‚ 국화‚ 대나무‚ 난초‚ 기러기‚ 연꽃‚ 파초‚ 괴석‚ 모란‚ 소나무를 그렸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화조화(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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