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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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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묵란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윤영기(尹永基)가 그린 묵란도 <작가설명> 옥경산인(?磬山人) 윤영기(尹永基‚ ?-?)는 1911년 최초의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인 경성화가미술원(京城畵家美術院)을 설립하였다. 전통적인 미술전문기관인 도화서가 없어지면서 화가양성을 위해 공인된 종합적인 교육기관의 출현이 요구되었고 또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점차 퇴락해 가는 전통 회화양식의 부흥이라는 시대적인 요구가 경성화가미술원의 주요한 설립배경이었다. 경성서화미술원 창립자인 윤영기는 또 상류사회층의 일부 서화애호가들을 자극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화미술회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신인을 양성하는 강습소를 발족시킨 것이다. 서화미술회 회장이 이완용(李完用)이었다는 사실도 일부 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운영체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강습소는 서과(書科)와 화과(畵科)로 나누어 각각 삼년간의 수업과정을 두었으며 교수진은 당대 대가급들로 구성되었다. 안중식‚ 조석진‚ 정대유‚ 강진희‚ 김응원‚ 강필주 등이 교수로 초빙되었다. 서화미술원은 사설 연구소와 같은 성격이 다소 있긴 하나 시스템에 있어서 이미 아카데미의 면모를 갖춘 근대적인 교육기관의 효시가 되고 있다. <작품설명> 문인화가인 윤영기는 난초를 잘 그려 흥선대원군의 집인 운현궁(雲峴宮)을 자주 드나들었고‚ 정치에 바쁜 대원군을 대신하여 난초그림을 많이 그려 주었다고 전해진다. 윤영기의 난엽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나 석파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난엽보다 더 가늘고 반전이 심하여 작위적이고 변덕스러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그림은 농담묵(濃?墨)을 ?어 그린 바위 옆에 핀 난초를 그린 것이다. 농묵의 난엽 몇개는 길게 늘어뜨려 흐느적거리는 듯하다. <참고문헌> 오광수‚ 『韓國琅代美術史』(열화당‚ 1997) EnCyber두산세계대백과-묵란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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