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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배
- 저작물명
- 흉배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3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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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정의> 조선시대에 왕족과 백관이 입는 상복(常服)의 가슴과 등에 달던 장식 <유래와 발달과정> 세종 28년(1446)에 처음 흉배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영의정이었던 황희의 반대로 제정되지 않았다. 단종 2년(1454)에 양성지의 건의에 따라 문무관 3품 이상의 상복에 흉배를 달았다. 당시의 문양은 대군은 기린‚ 도통사는 사자‚ 왕자와 군은 백택(白澤)‚ 문신 1품은 공작‚ 2품은 운학(雲鶴)‚ 3품은 백한(白?)이었고‚ 무신 1 ·2품은 호표(虎豹)‚ 3품은 웅표(熊豹)‚ 대사헌(?司憲)은 해태로 정하였다. 연산군 11년(1505)에는 1품에서 9품까지 모두 흉배를 사용하였는데 사슴‚ 돼지‚ 거위‚ 기러기 등 명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문양을 사용하였다. 영조 때에는 이를 간략화하여 문신 당상관은 운학 흉배‚ 당하관은 백한 흉배로 통일하였다. 고종 8년(1871년)에 이것을 다시 문신당상관은 쌍학(雙鶴)‚ 당하관은 단학(單鶴)‚ 무신 당상관은 쌍호(雙虎)‚ 당하는 단호(單虎)로 정하여 1910년까지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형태와 특징> 흉배는 관복과같은 색의 비단에 다양한 문양의 자수를 놓은 것으로 관복을 장식하는 동시에 품계를 표시해주는 구실을 하였다. 특히 왕족이 사용하는 흉배는 보(補)라고 하였는데 용무늬가 놓인 원형의 보를 가슴과 등‚ 양 어깨에 달았다. 문무백관의 흉배는 시대에 따라 다른 문양을 사용하였다. 이 흉배는 단학 흉배로서 청록색 비단에 불로초를 입에 물고 있는 단정학 한 마리와 구름‚ 바위‚ 파도‚ 불로초 등을 수놓았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흉배(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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