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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필행서팔곡병풍(鏡峰筆行書八曲屛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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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경봉필행서팔곡병풍(鏡峰筆行書八曲屛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경봉 정석(鏡峰靖錫:1892-1982) 한시와 시조‚ 묵필에도 뛰어나 현대의 선승들 중 가장 많은 선묵(禪墨)을 남겼다. 근대의 대선지식으로 법명은 정석(靖錫)이며 시호는 원광(圓光)이다. 이름은 김용국으로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7세에 밀양읍의 한문사숙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어머니를 여의게 되자 세상의 무상함을 느껴 16세인 1907년(隆熙 1) 6월 양산 통도사 성해(聖涇)대사에게 출가했다. 이듬해 3월 통도사가 설립한 명신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해 9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청호 학밀(晴湖 學密)에게서 사미계를 받았다. 1911년 명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4월 해담 치익(涇曇 致益)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 경학을 공부하다가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나 "자무반전분(自無半錢分)"이란구절에서 발심하여 제방을 편력하였다. 그러다가 36세인 1927년 11월 20일 야반삼경에 촛불 춤추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한암 중원(漢岩 重遠)‚ 제산(霽山)‚ 용성 진종(龍城 震鍾) 등과 서신 교류를 통해 배움을 돈독히 했다. 1932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에 취임하여 이후 50여년간 후학을 지도했다. 1935년 통도사 주지‚ 1941년 조선 불교 중앙선리참구원(선학원)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53년 11월 통도사 극락호국선원 조실로 추대되어 입적할 때까지 30여년간을 이곳에만 주석했다. 1973년부터는 매월 첫 번째 일요일에 암자에서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었는데‚ 1981년까지 계속되었다. 1982년 극락암에서 세수 91세‚ 법랍 75세로 입적하였다. 탑과 비는 1984년 통도사 일주문 밖에 세워졌다. 저술은 {법해}‚ {속법해}‚ {원광한화}등이 있으며‚ 18세부터 85세까지 67년 간 기록한 일지를 남겼는데‚ 한국 불교 최근세사를 조망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중원·진종·만공 월면(滿空 月面)·효봉 원명(曉峰 元明) 등 당대 큰스님들과의 서신과 선문답 등도 여기에 담겨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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