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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필전서사곡병풍(吳世昌筆篆書四谷屛風)
- 저작물명
- 오세창필전서사곡병풍(吳世昌筆篆書四谷屛風)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3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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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본관 해주(涇州). 호 위창(葦滄). 본명 중명(仲銘).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서울 출생. 1886년 박문국(博文局) 주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한성순보(漢城旬報)》 기자를 겸하다가 1894년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 ·농상공부 참의(參議) ·우정국 통신원국장을 역임하였다. 1897년 일본 문부성(文部省)으로부터 외국어학교 조선어 교사로 초청받아 1년간 교편을 잡았다. 귀국 후 1902년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 그곳에서 양한묵(梁漢默) ·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 신자가 되었다. 1906년 귀국‚ 만세보사(萬歲報社)와 대한민보사(?韓民報社) 사장‚ 대한협회(?韓協會) 부회장을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 후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그 후 서화가의 친목기관인 대한서화협회(?韓書畵協會)를 창립‚ 예술운동에 진력하였다.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뛰어났으며 서화(書畵)의 감식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8 ·15광복 후 매일신보사(每日新報社) ·서울신문사의 명예사장‚ 민주의원(民主議院) 의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韓獸立促成國民會) 회장‚ 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전쟁 중 대구에서 별세‚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저서에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근역인수(槿域印藪)》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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