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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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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여의주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수석이란 자연의 아름다움과 축경(縮景)의 오묘함을 야외에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돌. <개설> 수석은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유산이라고도 하고 신이 만들어 낸 예술품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창조할 수 없는 수석의 세계는 철학의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비하고 오묘한 동양 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일조한다고 할 수 있다. 수석의 종류는 크게 산수경석‚ 형상석‚ 문양석‚ 색채석‚ 추상석‚ 전래석‚ 괴석‚ 무늬석‚ 물형석 등으로 분류되며‚ 그 돌이 나오는 지방의 이름을 붙여 산지(産地)를 밝히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즉 충주 지방에서 나오는 돌이면 충주산‚ 점촌 지방에서 나오는 돌이면 점촌산 등으로 산지(産地) 이름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요즘은 돌이 나오는 강 이름을 붙여 남한강산이니 농암천산 또는 태화강산 등으로 강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와 지형에 따라 강돌[江石]‚ 산돌[山石]‚ 바닷돌[涇石]로 나뉜다. <발달과정/역사> 중국의 최고 지리서인 <서경>(약 3‚000년 전 씌워졌다 함) 우공편에는 괴석(?石)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우리나라도 멀게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가깝게는 조선시대초기의 강희안(1417-1464)의 양화소록에 유명한 말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괴석(?石)은 굳고 곧은 덕(德)을 가지고 있어서 군자의 벗이 됨에 마땅하다." 우리의 옛 동양화에서 선조들이 남긴 허다한 괴석도는 선비의 애석 자취를 넉넉히 반영해 주고 있으며 분에 올려놓은 괴석(수석)을 방안에 배치한 옛 그림도 발견되고 있다. 또 서민층에도 널리 퍼져있던 민화에도 애석하여 온 자취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따금 우리 선조들이 옛날에 사랑하였던 전래석이 세상에 가끔 밝혀지고 있으며‚ 고궁인 창경궁을 찾으면 궁중에서 누렸던 수다한 전래정원석을 구경 할 수가 있다. 우리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분들도 애석생활을 하셨다. 예를 들면 이퇴계(1501-1570)는 문양석을 좋아했다 하고 다산 정약용(1762 - 1836)이 강진에 귀양가서 직접 탐석하며 수석을 아꼈던 기록‚ 추사(1786-1856)역시 열렬히 애석(愛石) 하였던 분이셨다 한다. <일반형태 및 특징> 석중석이며‚ 수집지는 섬진강 이다. 암석의 분류로는 화성암이며‚ 모양은 돌안에 돌이 있는 형상으로 명칭처럼 여의주를 떠 올리게 한다. <세부사항> *석중석 돌 안에 또 다른 돌이 있는 것을 뜻함. *강돌[江石] 강이나 하천 또는 계곡‚ 연못 등에서 탐석되는 돌로 오랜 세월 동안 마모되고 씻겨져 표피가 매끄럽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화성암 지구 내부에서 유래하는 고온의 규산염 용융체(마그마)가 고결하여 형성된 암석. <참고문헌> 두산백과사전 / http://www.suseokmart.co.kr / 장준근‚ “수석”‚ 대원사‚ 1992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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