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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아접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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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바바리아접시(2)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반찬이나 과일 등을 담는 얇고 납작한 그릇. <개설> 비교적 편편한 모양의 것이 일반적인데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기에서 출토되고 있는 고배(高杯)가 오늘날의 접시의 조형(祖型)으로 추측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양요리용 접시를 접시라고 지칭하지만 그전에는 가제(家祭)에서 제물을 괴는 고배형 그릇을 모두 접시라 칭하였다. 즉‚ 뚜껑이 없이 편편한 식기에 대한 총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상고시대의 고배형 그릇은 시대에 따라 굽이 없어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만든 접시가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 · 백자 등이 있었다. 현재에는 사기나 유리 ·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것이 사용되고 있다. <역사> 동서교역의 통로였던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도자기가 유럽에 전파되면서 18C초 유럽에서 본격적인 백색자기 문화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유럽에서 자기를 포셀린(Porcelain) 이라고 명칭하는 것은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소개했다 해서 붙여진 말이며‚ 도자기를 보통 차이나(China)라고 부르는 것도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1709년 독일 마이센에서 처음으로 중국식 경질자기가 제작된 것을 시초로 하여‚ 유럽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자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왕들이 자기 제조사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 당시 백색자기는 금보다 귀한 것으로 간주되어 왕실과 특정 귀족사회에서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값진 보물이었다. 초기의 유럽자기에는 동양적인 문화와 철학이 담겨져 있으며‚ 문양이나 발색기법 등에서 오리엔트 양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근대에 이르면서 화려한 색상과 금색으로 서구 취향에 부응한 패턴으로 변화 발전되어갔으나 아직도 동양의 맥이 이어져 내려와 유럽자기에서 오리엔트 양식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특징> 음식을 먹기 좋도록 담거나 음식이 담긴 그릇의 밑에 받쳐 사용하는 납작한 그릇으로 원래는 우묵한 사발의 일종이었으나 점차 운두가 낮아지고 납작한 그릇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접시류는 plate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유물은 그림을 접시에 전사한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소년 둘이 나란히 앉아서 한 소년은 고개를 들고 빵을 먹고 있고‚ 다른 소년은 그것을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또 그옆에는 이를 보고 있는 개가 있는 그림이다. 또 그들 앞에는 매우 사실적인 과일 바구니 그림이 있다. 접시 바닥면에는 Breuther WALD SASSEN BAVARIA라는 제조명 문구가 있다. <참고문헌> 유혹하는 유럽도자기(2000‚ 한길아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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