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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쓴여인상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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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모자쓴여인상액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액자(額子) 그림·글씨·사진 따위를 넣어 벽에 걸기 위한 틀. 액틀. <역사> 독일의 도자기역사는 마이센도자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센도자가 지금의 마이센 도자로까지 발전하게 된 최초의 단계에는 왕권의 강력한 후원이 있었다. 즉‚ 당시 작센의 제후 아우구스트 공에 의해서 그 휘하 보거트와 그의 동료가 비법을 밝혀내면서 결실을 얻은 것이다. 작센은 독일 동남부에 위치한 대공국으로서 나폴레옹 시대에는 왕국으로 승격한 바 있다. 한때 폴란드 왕을 겸하기도 했던 아우구스트 공은 바로크의 도시라 불렸던 수도 드레스덴에 대규모의 웅장한 건축물을 건설했으며 수 차례의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특히 중국산 자기를 너무도 좋아하여 많은 양을 수집하였다. 또한 자랑하기도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여서 정력적으로 일을 벌이곤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만큼 자금이 따라주지 않아서 고민하는 처지이기도 하였다. 때마침 티룬 하이젠 이라는 화학자가 자기의 성분을 조사한 후 구조와 요의 온도를 연구하고 있었고 보트거라는 연금술사가 나타나서 자기 제조 실험에 동참하였다. 보거트는 하이젠과 함께 1707년에 두드리면 맑은 음색을 내는 자기의 제조 비법을 밝혀내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중국의 자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조잡한 수준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후로 원료로 사용했던 흙에 철분 함유량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작센의 아우에에서 나오는 백색의 흙을 사용하여 그 결과 1710년에 드디어 백자와 같은 흰색의 자기를 제조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일반적 특징> 이 작품은 도판을 이용한 초상화이다. 옆으로 앉아서 정면을 보는 모습의 형태를 한 것이다. 현재 작품만남아 있어 어떤 경로로 그려지게 됐으며‚ 초상화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도판 위에 그려 여인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몸은 측면으로 좌측을 향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모자로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로 챙이 넓고‚ 프릴이 들어간 붉은 모자로 상륜장식을 흰색의 레이스로 하여 세련된 모양을 하고 있다. 원피스에 드레스를 입은 것으로 보이며‚ 상체의 원피스는 파란색으로 붉은 색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블라우스의 어깨 장식은 부풀려 미감의 극치를 맞이했던 절정의 시기를 지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우측 하단에 작자의 사인이 들어가 있으나 정확히 이름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직사각형의 도판에 그린 것으로 본래 도판에 작업을 했을 때 도판크기에 맞춰서 액자를 끼운 상태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근래에 와서 보다 큰 틀로 본래의 액자 자체를 유물로 보호하고 전시하기 위해‚ 다시 액자에 끼운 것이다. 유리를 끼우지 않았으며‚ 마치 수채화처럼‚ 붓의 터치를 이용하여서 입체감을 주었다. <참고문헌> 유혹하는 유럽도자기(2000‚ 한길아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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