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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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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금동여래좌상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붓다(Buddha:佛陀)의 형상을 회화‚ 조각 등의 조형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진흙으로 구워 조성하고 표면을 금으로 입혀 만든 것. <개설> ‘불상’이란 말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의 존상을 뜻하므로 좁은 의미에서는 부처님 즉‚ 진리를 깨닫고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여래의 형상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사찰에서 봉안하고 있는 각종의 보살상과 나한상 및 불교의 수호신인 신중상도 불상에 포함된다. 따라서 여래(?來)상‚ 보살(菩薩)상‚ 신중(神衆)상‚ 조사(祖師)상 등 불교교리와 관련된 모든 형상의 조형물들을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발달과정/역사>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통일신라 말기에서부터 유행하던 촉지인의 불좌상이 계속 조성되었다. 그리고 우견 편단이나 통견의 법의는 약간씩의 변형을 이루면서 고려적인 독특한 불상 양식을 이루어 나갔다. 대체로 고려시대 전기에는 지방에 따라 몇 가지의 특징 있는 불상군이 제작되었다. 그 중에는 강원도 강릉 주변의 월정사‚ 한송사지‚ 신복사지의 석조나 대리석 보살상을 들 수 있다. 이 상들은 신라 말기의 불상 양식을 이어 주는 것 같으면서도 통통하고 풍만한 조형성은 중국의 송이나 요시대의 불상 양식이 어느 정도 반영된 듯하다. 또한 다른 한 유형은 강원도 원주나 경기도 광주‚ 충청남도 충주 지역에서 출토된 거대한 철불들로 신라 말기의 양식이 부분적으로 이어지면서도 지방색이 강한 특이한 불상 양식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점은 고려 초 이 지역에서 활약하던 호족들의 적극적인 불사의 후원과도 관련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유형은 충청남도의 석조불‚ 보살상‚ 전라북도 지역에 많이 보이는 기둥같이 큰 몸체에 관을 쓴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灌燭寺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8호)‚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鳥寺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8호)‚ 개태사지석불입상(開泰寺址石佛立像‚ 보물 제219호)이다. 이들은 토착적인 혹은 지방색이 강한 불상 형태가 많이 보인다. 민간 신앙적인 면과도 밀착되어 신앙된 것으로 생각된다. 거대한 불상의 조성은 또한 고려 왕실의 지방적 기반을 강화하는 의미도 반영되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불상 조성의 의욕은 크나 기술면에서 뒤떨어진 조형 감각을 보여 주고 있다.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 황실과의 관계에 따라 라마 불교가 전해져서 현존하는 불상 중에는 티베트‚ 네팔 계통의 이국적인 요소가 보이는 특이한 불상 양식이 혼재하고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고려 초기에 형성된 조각 양식이 좀더 큰 영향력을 지니면서 부드럽고 온화한 조상 양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장곡사금로 머리는 둥글고 원만하다.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가 평평하여 거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상호는 마모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으나 눈‚ 코‚ 입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의는 통견이며 옷 주름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으며 승각기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왼손은 무릎 위에서 바닥 쪽을 향하게 올려놓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어서 중지와 엄지를 맺고 있는데 일부 마모되어 정확하지 않다. 상체에 비하여 작고 왜소하게 표현된 하체는 결가부좌하고 있으나 오른발은 거의 표현되지 않고 있다. 광배는 결실되어 없으며 대좌 없이 원형 위에 있어‚ 광배와 대좌가 함께 주조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韓國佛像의 硏究(黃壽永‚ 三和出版社‚ 1973)‚ 韓國의 佛像(秦弘燮‚ 一志社‚ 1976)‚ 韓國彫刻史(文明?‚ ?話堂‚ 1980)‚ 佛像硏究(崔完秀‚ 知識産業社‚ 1984)‚ 韓國古代佛敎彫刻史硏究(金理那‚ 一潮閣‚ 1989)‚ 高麗朝鮮時代의 彫刻(文明?‚ 韓國美術史의 琅況‚ 一志社‚ 1992). 韓國民族文化?百科事典(한국정신문화연구원).동약사여래좌상(長谷寺金銅藥師?來坐像‚ 보물 제337호)과 문수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文殊寺金銅阿彌陀?來坐像)을 들 수 있다. 더욱이‚ 이 두 상은 1346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 주는 명문이 있어 고려 후기 불교 조각의 편년 설정에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는 예이다. 또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금동불감(金銅佛龕) 몇 예가 전해지고 있다. 이는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소형의 전각(殿閣) 내부 벽에 불상을 부조(?彫)하고 또 금동불을 안치하여 개인의 원불(願佛)로서 혹은 여행하면서 예배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불상으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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