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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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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흑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검은 가죽으로 만든 마른신. <발달과정/역사> 문헌상 가장 오래된 신으로는 부여의 혁탑(革藥)‚ 마한의 짚신·초교(草槁)·초교답(草槁穹) 등을 들 수 있다. 이것들은 가죽이나 풀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진보된 형태의 신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를 귀족계급에서 주로 신었고‚ 통일신라시대에서는 ‘화’와 ‘이’가 병용되었다. 고려 초에는 ‘이’를 주로 사용하다가 고려 말에 ‘화’를 많이 사용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혜’를 대표적인 신으로 사용하고 ‘화’는 상류계급에게만 허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와 ‘화’의 이중제도는 조선 말까지 그 전통을 이어왔으며 개화기 이후 서양의 구두 등 새로운 신발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신의 기본구조를 이루면서 발전하여 왔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가죽신은 겉모양을 보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버선같이 목이 달려있고 하나는 목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죽신을 화(靴)라고 하지만 전래의 가죽신 중에는 높이가 짚신 높이만 한 것이 있고 부녀자의 신에는 목이 없는 것이 있다. 버선 위에 신는 탓으로 외모는 버선과 비슷하여 신코가 버선코 모양으로 코끝이 곡선을 그리고 있다. 관원들의 관복차림에는 반드시 검은 가죽신을 신도록 규제했었다. 이 가죽신은 앞부분을 버선코 모양으로 코끝을 들어올리지 않아 부드럽고 편안해 보인다. 주위에는 가죽을 덧대어 장식한 뒤 촘촘하게 바느질을 하였다. 가운데에는 양쪽의 가죽을 맞대어 바느질 한 것이 보인다. 신발의 뒷면에도 가죽을 덧대어 장식을 함과 동시에 쉽게 달지 않도록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바닥에는 지름 0.5mm 정도의 쇠 징을 박아 바닥이 쉽게 닳지 않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개정용어집>>‚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8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박물관도록>>‚ 대전대학교박물관‚ 2000 <<숭실대학교박물관도록>>‚ 숭실대학교박물관‚ 2004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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