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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화무늬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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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보상화무늬수막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목조건축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되었던 기와 <발달과정/역사> 수막새의 사용은 중국(中國)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만들어진 반원(半圓)수막새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고구려(高句麗) 지역에서도 이러한 반원수막새가 출토된 적이 있다. 신라시대(新羅時代)에서 수막새 사용의 시작은 대략 기원후 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이후에는 이전의 시대보다 다양한 종류의 문양을 가진 수막새가 등장한다. 예를 들면 통일이전의 신라시대에는 연화문수막새가 대부분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연화문(蓮花文)‚ 보상화문(寶相華文)‚ 서조문(瑞鳥文)‚ 사자문(?子文)‚ 가릉빈가문(迦陵頻伽文)‚ 기린문(麒麟文)‚ 불상문(佛像文)‚ 귀면문(鬼面文) 등으로 다양한 종류의 수막새문양이 등장한다. 연화문 다음으로 널리 이용된 보상화문(寶相華文)은 반쪽의 팔메트(palmette)잎을 좌우로 대칭시켜 심엽형(心葉形)으로 나타낸 장식무늬로서 보상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꽃이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빈번한 문물교류를 통해 당에서 형성된 보상화문 양식을 받아들였으며‚ 8세기 중엽에 이르러 가장 화려하게 발전된 양상을 보여준다. 보상화문수막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안압지(雁鴨池) 등에서 암막새와 짝을 이루어 사용되는 예가 확인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수막새 문양은 다종다양하고‚ 경주(慶州)지역의 발굴조사(發掘調査)에서 대량으로 출토되어 신라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여기에서 소개하는 보상화무늬수막새[보상화문원와당(寶相華文圓瓦當)]는 드림부만 남아 있으며‚ 약 2/3 정도 결손(缺損)된 상태이다. 태토에는 1mm-2mm의 세사립이 첨가되어 있고‚ 색조는 청회색이다. 철(凸)형으로 높이 솟은 자방(子房)의 중앙에는 화문(花文)이 장식되어 있고‚ 화문 주위로는 4엽(葉)의 인동문(忍冬文)이 배치되어 있는데 꺾어진 판근(瓣根)들이 연접(連接)한 형태이다. 자방 주위로 단판(單瓣)의 보상화문(寶相華文) 연판(蓮瓣)이 둘러져 있으며‚ 판면(瓣面)에는 화문이 시문(施文)되어져 있다. 현재는 3엽만 확인되고 있다. 연판 사이에는 연판의 판면과 유사한 화문이있다. 주연에는 구슬모양의 돌기가 촘촘히 배열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구별하기가 어렵다. 드림부의 악면(顎面)에서는 당초문(唐草文)이 확인되어 진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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