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환두대도

추천0 조회수 643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환두대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칼 손잡이 끝에 둥근 형태의 머리를 가진 큰칼 <발달과정/ 역사> BC 400경에 청동검과 함께 철제검이 나타나고 BC 200년을 전후해서 환두대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BC100년 삼국시대가 시작되면서 환두대도가 삼국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무기로 사용되었다. 고구려의 환두대도는 백제와 신라‚가야에 까지 전하여져서 드디어 삼국시대는 환두대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백제는 국가기관에 도부(刀部)를두어 특별히 칼을 제조하였으며‚ 신라에서 사용되었던 환두대도는 삼엽환두대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우주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시 교외에 7세기 아프로시압 도성의 벽화에 새깃털을 꽂은 모자인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신라 사신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이것은 신라의 국제사회와 널리 교류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세기 5C경의 삼실총 2실에 허리에 환두대도를 찬 무사상이 그려져 있다. 5세기대의 왕릉에서 왕이 패용하는 대도는 삼루환두대도이고‚ 6세기 왕이 패용하는 것은 용봉문환두대도이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직도에서 칼날이 휘어진 곡도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환두대도는 BC200년부터 고려시대까지 약 1000년 동안 사용하던 우리의 전통검이었다. AD10세기 신라가 고려에 흡수되면서 신라인들 또한 일본에 건너가 병법과 도검 제작 기술이 전수되어 일본 도검의 원류를 이루었다. 환도대도(環頭?刀)란 칼 손잡이 끝에 둥근 형태의 머리를 가진 칼날이 조립되지 않고 하나로 된 일체형으로 칼은 곧은 직도로써 칼날은 거의 직선을 이루면서 끝 부분으로 갈수록 밋밋하게 좁아 들었다. 칼날과 손잡이 사이에 손을 보호하는 칼 방패인 고동(古銅)이 없다. 검집은 나무에 칠을 하거나 동물의 가죽을 감싸서 만들었고. 손잡이 부분은 나무로 덧대고 가죽으로 감싸거나‚ 금실과 은실을 교대로 감아 장식한 것도 있다. 손잡이 부분의 앞과 환두(環頭)에 금은으로 상감처리해서 무늬를 새기고‚ 환두 안쪽에 용이나 봉의 머리를 만들어 넣기도 한다. 환두의 장식에 따라 종류가 나뉘어지는데 소환두대도(素環頭?刀) 는 검 손잡이 끝의 환두 안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형태의 대도 ‚ 삼엽환두대도(三葉環頭?刀) 는 환두에 삼엽무늬가 장식된 대도‚ 삼루환두대도(삼루환두대도)는 둥근고리 3개가 연접된 환두를 가진 대도‚ 용봉문환두대도(龍鳳紋環頭?刀) 는 용이나 봉의 머리장식이 있는 환두를 가진 대도이다. 이처럼 분류하며 신분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장식 형태가 구분된다. <일반적인 형태와 특징> 여기서 소개하는 환두대도(環頭?刀)는 환두가 파손 되어있다. 단조제품으로 부식으로 인한 표면의 박리가 심하고 균열이 있다. 인부는 직인(直刃)이며‚ 인부(刃部)와 배부(背部)가 구별된다. 신부(身部)와 경부(莖部)는 뚜렷한 구분 없이 연결되어 환두부(環頭部)로 이어진다. 환두부는 원형으로 되어있고 장식이 없는 소환두대도(素環頭?刀) 이다. 신부(身部)의 단면(斷面)은 삼각형이고 환두부(環頭部)의 단면은 원형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