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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유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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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흑유단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흑(갈)유(黑褐釉)란 철분이 많이 함유된 유약이 두텁게 시유되었을 때에 흑색‚ 흑갈색을 띠는 자기로서‚ 반자기질이나 자기질의 태토를 이루어 기벽이 묵직하거나 가벼운 흑(갈)유 자기가 대부분으로‚ 유색이 짙고 여린 경우에 따른 흑유‚ 흑갈유자기로 불리우고 있다. [발달과정/역사] 흑(갈)유(黑褐釉)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최근 발굴조사 된 황해남도 봉천 원산리 청자 가마터에서 청자와 함께 발견된 예와‚ 1982년 고흥 운대리요지에서 햇무리굽 청자보시기들과 함께 출토된 흑유 자기편들‚ 그리고 해남 진산리 일대의 요지에서 수많은 녹청자와 함께 흑유‚ 흑갈유 자기편들이 발견된 것들이 있다. 이들 자료에 의하면‚ 용인 서리요지의 햇무리굽층(2층‚ 3층)에서 청자보시기편들과 함께 흑유 자기편이 소량 발견되었으며‚ 봉천 원산리 3‚4호 요지에서도 햇무리굽 청자 보시기들과 함께 발견되고 있고‚ 고흥 운대리요지에서도 햇무리굽 청자보시기와 함께 흑유 광구병‚ 흑유단지 편이 발견되고 있어 先햇무리굽(4층)의 제작 시기 이후인 1022년 전후 무렵에 청자의 가마에서 청자와 함게 제작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자의 보시기나 대접‚ 접시 등은 만든 예가 없고‚ 주로 광구병이나 단지‚ 병 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주목되며‚ 태토도 철분이 많은 반자기질의 태토의 예가 대부분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형으로는 고려시대에는 광구병‚ 술병‚ 주전자‚ 유병‚ 광구의 항아리‚ 큰 합‚ 정병‚ 대접‚ 잔 드으로 만들어졌으며‚ 항아리 및 단지와 광구병‚ 술병의 예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단지‚ 손잡이 달린 동이‚ 약탕기‚ 둥근 단지‚ 기름병‚ 대접‚ 귀대접‚ 매병‚ 술병‚ 큰 병 등이 있으며‚ 특히 단지와 병종류가 많이 만들어져 남아 있다. 특색은‚ 문양이 거의 없는 무문(無文) 위주이고‚ 드물게 음·양각의 연판문을 동체에 시문한 광구병 등이 있을 뿐이다. 기형은 녹청자나 도기의 기형을 닮고 있는 예가 주목되며‚ 녹청자와 구별이 어려운 예도 있다. 조선 초기에는 분청자의 기형을 닮고 분청자의 요지에서 제작된 예가 많으며‚ 흑유 자기窯에서만 제작된 듯한 술병이나 편병의 예도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는 질그릇병을 닮거나 동이‚ 단지 등을 닮은 예와 칠기를 닮은 예도 있어 질그릇과 함께 생활에 널리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흑유단지는 구부(口部)가 넓고‚ 구연(口緣)은 전을 이루고 세워졌으며‚ 어깨에서부터 둥글게 벌어져 동체(胴體)를 이룬 단지이다. 기면(器面) 전체에 녹갈색의 유약이 짙고 여리게 시유되어 흘렀으며‚ 저부(底部)에 응어리져있다. 굽바닥은 평저(平底)이며‚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갔고‚ 바닥의 가장자리 주변에 모래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저부(底部)에 재가 붙어 있고‚ 구연(口緣)의 여섯 곳에 내화토를 받치고 포개 구은 흔적이 남아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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