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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화 : 홍의장군 곽재우(紅衣將軍 郭再祐)
- 저작물명
- 기록화 : 홍의장군 곽재우(紅衣將軍 郭再祐)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8
- 분류(장르)
- 사진
UCI 로고
- 요약정보
- <정의>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가 정암진(鼎巖?:지금의 경남 함안)에서 강을 건너오는 왜군을 섬멸하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 <발달과정/역사> 곽재우는 본관이 현풍(?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며‚ 의령(宜寧) 출생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함안군을 점령하고 정암진 도하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홍의(紅衣)를 입고 선두에서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왜적을 피해 달아났던 감찰사 김수(金)와의 불화로 누명을 쓰고 구금되었다가‚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장계(狀啓)로 석방된 후‚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조방장(助防將)·성주목사(星州牧使)를 역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경상좌도방어사(慶尙左道防禦使)로 임명되어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비하였고‚ 경상우도조방장(慶尙右道助防將)이 되어 영창대군(永昌?君)을 신구(伸救)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낙향하였다. 여러 차례 경상도 병마절도사·수군통제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는데‚ 그 후 부총관(副摠管)·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거쳐 함경도관찰사를 지내다가 당쟁으로 나라의 형편이 날로 어지러워질 뿐만 아니라‚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죄없이 잡혀 올라오고 또 절친한 사이인 광주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 이몽학(李?鶴)의 난에 휘말려 죽은 일을 통탄하여 벼슬을 사퇴하고‚ 창암(蒼巖)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은둔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필체가 활달하고 시문에도 능했다. 저서로는 {망우집}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김태(金泰)가 그렸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가로 291cm‚ 세로 197cm * 도하작전(渡河作戰‚ river crossing operation) : 적이 통제하여 건널 수 없는 하천(河川)의 건너편에 교두보(橋頭堡)를 설치하기 위한 작전. 교두보를 설치함으로써 정상적인 공격작전을 수행하는 전투부대를 안전하게 도하(渡河)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교두보가 설치되어 우군의 보호하에 도하하는 행위나 우군의 통제하에 있는 하천을 도하하는 것은 도하작전이라 하지 않는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