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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 진주성도(晋州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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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병풍 : 진주성도(晋州城圖)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진주성(晋州城)의 내외성과 그 부속 시설물 등을 알아보기 편하게 그린 관방지도 병풍 <발달과정/역사> 진주성은 원래 백제시대의 거열성지(居烈城址)였는데‚ 고려 공민왕(?愍?) · 조선 세종(世宗)때에 무너진 성을 다시 쌓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시민(金時敏)이 왜군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 후 1608년 내성(內城) 외곽에 대규모의 외성(?城)을 쌓고‚ 호(濠)를 파서 방어 기능을 높였다. <제원> 길이 : 103cm‚ 폭 : 288cm(8폭 병풍) * 목사(牧使) : 고려 중엽 이후와 조선시대 관찰사 밑에서 목(牧)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職) 문관. 목은 큰 도(道)와 중요한 곳에 두었는데‚ 왕실과 관계가 있는 지방은 작더라도 목으로 승격시켰다. 목사는 신라 때의 군주(軍主)와 그 직위가 같으며‚ 보통 병권(兵權)을 가졌다. 고려 때는 전국 12목에 목사를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에 3명‚ 충청도에 4명‚ 경상도에 3명‚ 전라도에 4명‚ 황해도에 2명‚ 강원도에 1명‚ 함경도에 1명‚ 평안도에 2명 등 모두 20명의 목사를 두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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