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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화(`95護國記錄畵) : 대한제국 시위대 군사훈련(?韓帝國 侍衛隊 軍事訓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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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기록화(`95護國記錄畵) : 대한제국 시위대 군사훈련(?韓帝國 侍衛隊 軍事訓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대한제국 시위대(侍衛隊) 병력이 총융청(摠戎廳‚ 지금의 세검정 국민학교)에서 사격술‚ 제식훈련‚ 총검술 등을 훈련하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 <발달과정/역사> 시위대는 1895년(고종 32) 5월 25일 칙령(勅令) 120호의 반포에 따라 편성된 군대로‚ 군부대신의 감독 아래 궁내의 시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 편제는 1개 연대(2개 대대)·1개 대대(2개 중대)·1개 중대(3개 소대)로 하였으며 연대에는 연대장(副領)을 비롯‚ 대대장(參領) 2명‚ 부관(副官:副尉) 2명‚ 향관(餉官:正尉) 2명‚ 중대장(正尉) 4명‚ 소대장(副尉:參尉) 14명이 있었다. 이들은 양번(兩番)으로 나누어 매 3일마다 교대하여 궁내 시위를 담당하였으며‚ 군악대도 부설하였다. 그러나 창설 3개월 후인 8월‚ 일본인 수비대와 일본폭력단이 조선군 훈련대와 합세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산되어 훈련대에 편입되었다. 고종이 러시아공관(公館)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중앙군(中?軍)을 러시아식으로 개편하면서‚ 1897년(광무 1) 3월 시위대를 다시 설치하였다. 이 당시의 시위대는 총원 1‚070명으로 200명을 1개 중대‚ 5개 중대를 1개 대대로 편제하였는데‚ 대대본부에는 대대장 1명‚ 부관(부위) 1명‚ 향관(軍司) 1명‚ 정교(正校) 1명‚ 부교(副校) 1명을 두었으며‚ 중대에는 중대장 1명‚ 소대장 4명‚ 부교·참교 14명‚ 병졸 180명을 두었는데‚ 10월에는 1개 대대를 추가 편성하여 제1대대와 제2대대라 하였다. <일반적형태 및 특징> 캔버스 천에 그린 유화이며‚ 김윤식(金潤植)이 그렸다. <제원> 가로 291cm‚ 세로 197cm * 향관(餉官) : 한말 육군 각 부대의 회계관. 급여출납·예산결산·식량관리 등의 경리업무를 맡아본 주임관(?任官)으로‚ 위관급(尉官級)이었다. 1897년(광무 1) 친위대에 2명‚ 호위대(扈衛隊)에 1명‚ 1899년 진위대대(鎭衛?隊)와 무관학교에 각 1명‚ 시위기병대대에 2명‚ 1900년 헌병사령부 각 헌병대 포병대대에 각 1명‚ 1904년에는 참모부와 군기창에 2명‚ 교육부 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 ·육군유년학교에 각 1명이 배속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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