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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정(警備艇)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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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경비정(警備艇) (모형)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연안(沿岸) 해상(涇上)을 경비(警備)하는 소형의 함정(艦艇) <발달과정/역사> 1944년 9월에 일본(日本) 해군이 경비정으로 기공(起工)하였으나‚ 일제(日帝) 패망(敗亡)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한국 해군 공창(工廠) 기술진이 1946년 2월에 건조(建造)하여 충무공정으로 명명(命名)하고‚ 1950년 7월에는 PG-313정으로 선체(船體) 번호를 부여하였다. 여수?순천사건 진압작전(鎭壓作戰)‚ 서해안(西涇岸) 봉쇄작전(封鎖作戰)‚ 덕적?영흥도 상륙작전‚ 동해(東涇) 원산(元山) 앞 해상경비 작전 등 6.25 주요 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후에도 많은 경비 작전 임무를 수행하다 노후 되어 1956년 3월에 퇴역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무장으로는 40mm 1정‚ 20mm 2정‚ 구경(CAL) 50 2정을 장착하였으며‚ 승조원(乘操員)은 37명이었다. <제원> 전장 46.63m‚ 전폭 6.7m‚ 흘수 2.02m‚ 배수량 287t * 함정(艦艇) : 크고 작은 군함을 통틀어 이르는 말. * 공창(工廠) : 1.철공 제품을 만드는 공장. 2.무기‚ 탄약 따위의 군수품을 만드는 공장. * 여수.순천사건(麗水順?事件) :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당시 국방군) 제14연대 일부가 일으킨 반란사건. 흔히 여순반란사건이라 약칭한다. 【사건의 배경】 8.15광복 후 한반도의 남북분단이 고착화되어가자‚ 북한 공산세력은 전한반도의 적화(赤化)를 기본전략 목표로 삼고 온갖 책략을 일삼던 중‚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세력의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그들의 활동은 모두 비합법적인 지하활동으로 전환‚ 남한의 각계각층에 공산당 프락치를 심어 지하당을 조직하고 동시에 국민을 선동‚ 조종하여 태업(?業)‚ 파괴‚ 폭동‚ 방화‚ 살인 등으로 사회질서를 극도로 혼란케 하고 민심을 불안에 빠뜨림으로써 이른바 혁명적 여건을 조성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이 눈앞에 다가오자 그들은 온갖 수단으로 그것을 저지.방해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1948년 4월 3일‚ 공산분자들의 조직적이고도 대규모적인 공작으로‚ 제주도 일원에 폭동사건이 발생하였다. 물론 현지 주둔 국군 병력과 경찰이 합동으로 진압작전을 벌였으나 폭동의 규모에 비하여 병력이 열세여서‚ 시급한 증원 병력이 필요하였다. 이에 정부는 그 해 10월‚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병력 약 3‚000명의 제주도 급파를 결정하였다. 한편 이 14연대에는 이미 공산당의 프락치가 침투되어 있었는데‚ 이보다 수일 전에 이 부대 소속 오동기(吳東起) 소령이 공산당 프락치임이 밝혀져 검거되었다. 그래서 또 다른 프락치와 반란 음모 관련자들의 색출을 위한 조사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에 자신들의 검거가 임박했음을 직감한 적색분자들과 관련자들은 극도의 불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고‚ 어차피 음모가 노출된 이상 최후 수단을 택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제주도로 향발하기로 되었던 그 날 미명(未明)‚ 국군사상 일대 오점을 남긴 반란사건이 일어났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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