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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땅굴 자료 : 갱차(坑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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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제 1땅굴 자료 : 갱차(坑車)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1974년 11월 15일 경기도 고랑포 동북방 8km 지점에서 발견된 제1땅굴의 구축 시 사용한 ‘갱차(坑車)’ <발달과정/역사> 북한은 남북 적십자회담 및 남북 조절위원회 회담 등을 통해 겉으로는 대화를 계속하는 척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습남침을 위한 땅굴을 파고 있었다. 1972년 5월부터는 휴전선 전역에서 땅굴을 파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은 4개이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경기도 고랑포 동북방 8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이 땅굴의 크기는 1.2×0.9m(높이×폭)이며‚ 깊이가 45cm‚ 총길이 3‚500m‚ 침투길이는 1‚000m이다. 땅굴의 예상 기습로(套襲路)는 고랑포에서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방향이다. <기타참고사항> 땅굴 : 북한이 기습작전을 목적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에 굴착 한 남침용 군사통로. 전면적 기습전과 후방공략을 달성하기 위한 북한의 땅굴은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땅굴사업은 1971년 9월 25일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金仲麟)과 북한군 총참모장 오진우(吳振宇) 등에게 내려진 “속전속결전법을 도입하여 기습전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는 김일성의 ‘9.25교시’에 의하여 개시되었다. 땅굴의 발견경위와 규모는 다음과 같다. ⑴ 제1땅굴:1974년 11월 11일 경기 연천 고랑포(高??) 북동쪽 8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90cm‚ 높이 1.2m‚ 길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다. ⑵ 제2땅굴:1975년 3월 19일 강원 철원(鐵原) 북쪽 13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2.1m‚ 높이 2m‚ 깊이 지하 50-160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가 통과할 수 있다. ⑶ 제3땅굴:1978년 10월 17일 판문점(板門店) 남쪽 4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2m‚ 높이 2m‚ 깊이 지하 73m‚ 길이 약 1.6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다. ⑷ 제4땅굴:1989년 3월 3일 강원 양구(楊口) 북동쪽 26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2m‚ 높이 2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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