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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실기(杏史實記)
- 저작물명
- 행사실기(杏史實記)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8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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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정의> 구한말의 애국지사 양회일(梁會一)의 순국 사실을 기록한 책자 <발달과정/역사> 양회일(梁會一‚ ?-1908)은 본관이 제주(濟州)‚ 자는 해심(涇心)‚ 호는 행사(杏史)이며‚ 전남 능주(綾州)에서 출생했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충성심이 두드러진 유생으로서‚ 그 명성과 덕망으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양열묵(梁烈?)?이병화(李秉華) 등과 가산을 털고 의병을 모아 1907년에 창의(倡義)하여‚ 전라남도의 능주?화순?동복 등지를 중심으로 왜적과 싸웠다. 의병장으로서 1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그해 4월 22일 능주의 군아(郡衙)와 순사주재소를 공격하여 총 5자루를 빼앗았다. 이어 화순의 군아와 헌병 분파소를 격파하였다. 그러나 광주를 치려다가 해가 저물어‚ 화순과 동복의 경계에 주둔할 때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격전 끝에 패하여 체포되었고‚ 이후 전남지도(智島)로 유배되었다. 그해 12월에 풀려나자 재기하여 1908년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려다가 강진(康?)에서 일본 헌병에게 잡혀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장흥에서 옥고를 치를 때 적을 크게 꾸짖고 단식 7일 만에 순국하였다.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建國褒章)이 추서되었다. 본 유물에는 1950년대에 발간된 책자로‚ 양회일이 을사조약 체결 후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국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석판복(石板本) 이다. <제원> 가로 : 20.2cm‚ 세로 : 29cm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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