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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관병편오책잔권(鎭管官兵編伍冊殘卷) 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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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진관관병편오책잔권(鎭管官兵編伍冊殘卷) 1‚2권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선 선조때 유성룡(柳成龍)이 평안도 각 진영(鎭營)의 관병(官兵) 편성을 기록한 책자 <발달과정/역사> 1936년에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 제 10≫으로 편찬한 책으로 1591년(선조 24)에 평안도 예하 여러 진(鎭)의 진관관병(鎭管官兵) 편제와 소속인원의 명단을 적은 책이다. 모두 11책이나 거의 유실되었고 2책만이 유성룡(1542 1607)이 지은 『난후잡록(亂後雜錄)』의 배지(背紙)로 사용되어 경북 안동 산면 유승우(柳承佑)씨 집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본 책은 이것을 영인한 것이다. 유성룡은 의성 출생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이현(而見)이고 호는서애(西厓)이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중(仲)이다. 이황의 문인이며 김성일(金誠一‚ 1538-1593)과 동문 수학하였다. 1566년(명종 21)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68년(선조 1)에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정언·이조정랑·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동인(東人) 중의 온건파인 남인(南人)에 속한다. 1591년에는 왜란에 대비하여 진관법(鎭管法)을 고칠 것을 건의하였으며‚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하였다. 1598년(선조 31)에 명나라 경략(經略) 정응태(丁應泰)의 무고사건으로 북인(北人)들의 탄핵을 받자 은거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1책에는 안주진(安州鎭)과 영변부진(寧邊府鎭)의 관병편오표(官兵編伍表)가 수록되어 있는데 안주진 예하의 영유와 숙천‚ 영변부진 예하의 희천·박천·태천 등지의 관병편오표가 실려 있다. 제2책에는 구성진(龜城鎭)과 후별영 의주진(後別營義州鎭)의 관병편오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의주진 예하의 용천·미곶·철산·인산·건천·수구·옥강·방산·청성·청수 등지의 관병편오표도 실려 있다. 안주진과 영변부‚ 구성진과 의주진의 관병편오표에는 관직별로 총 인원이 기재된 계개(計開)와 각관하잡류(各官下雜?)가 실려 있는데 각관하잡류에는 영장(營將)·파총(把總)·초관(哨官) 등에게 소속된 기수(旗手)·마부(馬?)·서기(書記)·호포수(號砲手)·고수(鼓手) 등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편오표를 보면 당시의 관병은 각 지역마다 실정에 따라 여러 초(哨)로 구성되었으며 1초는 대개 3대(隊)로 구성되어 있고‚ 1대는 대장(隊長) 1명과 화병(火兵) 1명을 포함하여 12명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관병들은 등패(?牌)·조총(鳥銃)·사수(射手)·장창(長槍) 등으로 병종이 표시되어 있다. 천인(賤人)도 소속되어 있으며 이들의 이름 앞에는 ‘?(노)’자가 쓰여 있다. 기록 끝에 평안도관찰사의 수결이 있다. 선조대에 실시된 진관체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제원> 가로 : 15.2cm‚ 세로 : 27.2c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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