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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겁창(철모 鐵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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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투겁창(철모 鐵矛)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B.C. 2세기경부터 삼국시대까지 널리 쓰인 찌르는 무기 철제투겁창이라고도 함 <발달과정/역사>자루의 끝에 찌르는 양날의 날끝을 붙여‚ 자루를 양손에 쥐고 그 끝으로 적을 향해 찔렀다. 창은 신석기시대의 돌창(石槍)처럼 매우 이른 시기부터 나타나는 무기인데‚ 만들기 쉽고 던진다든가 손에 쥐고 적을 공격하는데 편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방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므로 근거리 접전에서 기본 무기로 오랫동안 쓰였다. 중국의 경우 철모(鐵矛)는 보병용이 4.5m이고‚ 전차병용(戰車兵用)이 5.4m인데‚ 우리의 경우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듯이 보기병(步騎兵)의 가장 보편적인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출토되는 것은 대체로 유기질의 자루부분은 사라지고 날끝만 남아있다. 재지적인 보수성이 강하여 중국의 영향을 적극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체제작기술의 전통을 많이 유지하여‚ 청동기시대의 동모(銅矛) 형태를 계승하였다. 우리 말의 창은 한자어로 창(槍) 모(矛) 피(?) 등으로 표기되는데‚ 중국에서는 창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있고 그 속에 자루를 끼우게 된 창을 `모`‚ 창날에 슴베가 달려 자루에 꽂게 된 것을 `피`라 불렀다. 일본에서는 전자를 `모`‚ 후자를 `창`이라 구분하였다. 우리나라의 구분은 대체로 일본의 것을 따르는데‚ 철창은 드물게 발견되고 있어 주력무기로써 철모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 전반부터는 단면 마름모꼴에 자루끝이 제비꼬리 모양의 철모가 등장하여‚ 철촉의 변화‚ 철제갑주의 착용과 더불어 고대 무기체제의 하나의 획기를 이룬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모가 가장 중요한 개인병기로 등장하는데‚ 고구려 군사유적인 구의동(九宜?)보루유적에서 확인된다. 한편 창날의 형태에 따라 창류에는 모(矛) 이외에도 삭(?) 극(戟) 연(?)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 삼국에서는 고구려에서 일부 사용한 사례가 보일 뿐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철모의 신부(身部)가 매우 긴데 이것은 철모의 성능과 관련이 깊다. 적에 직접 닿아 찌르거나 베는 역할을 하는 신부(身部; 날부분)가 짧은 경우에는 긴 자루를 박아 찌르는데 유리한데‚ 이것은 신부가 길어 베는 용도에 더 적합하다. 변·진한(弁·辰韓)지역이었던 경상도지역에서는 신부가 길고 단면이 판상(板狀)으로 된 철모가 다량 출토되는데 시기는 2세기에서 4세기 초에 해당한다. 당시의 무기체제상에서 도검류의 공백을 메워 베는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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