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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쇄어(?江鎖語)
- 저작물명
- 청강쇄어(?江鎖語)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8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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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청강(?江) 이제신(李濟臣)의 수필집. <일반사항 및 특징> 《청강쇄어(?江堺語)》 《후청쇄어(又鯖堺語)》라고도 한다. 1책. 1629년(인조 7) 간행된 1책 및 필사본 등이 있고‚ 《대동야승(?東野乘)》(권57)에도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한국의 풍속 ·관습 및 문물제도의 연혁(沿革) ·고사(故事) 등을 적었고‚ 합철(合綴)된 《청강선생 사재록(?江先生?齋錄)》에는 명사(名士) ·고구(故舊) 등의 일화와 행적‚ 시화(詩話) 및 소화(笑話) 등도 실었다. 책 끝에 이명준(李命?)의 발문이 있다. 이제신-본관 전의(全義). 자 몽응(?應). 호 청강(?江). 시호 평간(平簡). 7세에 시를 지을 정도로 영민하였으며‚ 17세에 조욱(趙昱)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6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권지정자(權知正字)가 되었다. 이 후 내직으로는 예문관검열‚ 성균관전적‚ 형조 ·공조 ·호조의 정랑을 거쳐 사헌부감찰‚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외직으로 울산군수‚ 진주목사‚ 함경북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러한 관직생활 중에 사은사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진주목사로 있을 때는 병부(兵符)를 잃은 바람에 관직에서 물러났고‚ 1584년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로 있을 때는 경원부(慶源府)를 침략하여 함락시킨 여진족의 이탕개(尼湯介)를 막지 못한 죄로 의주 인산진(麟山鎭)에 유배되어 죽었다. 1585년 신원되어 병조판서가 추증되었다. 글씨에 능하였으며‚ 청백리에 책록되었고‚ 청주의 송천서원(松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청강집》 《청강소설》 《진성잡기》 등이 있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