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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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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대한제국주화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주화란 주조화폐의 약칭으로 일정한 순분(純分)을 가진 일정량의 금속을 일정한 모양으로 가공하여 각인(刻印)한 금속화폐를 말한다. <일반사항 및 특징> 근대주화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대한제국 시대까지의 화폐로서 고종 20년(1883) 화급한 국가의 재정궁핍을 해결하고 화폐제도를 서구식으로 개혁‚ 신식 화폐로 통일하여 조폐수익을 높이기 위하여 전환국을 설치하고 금‚ 은‚ 동‚ 청동 등 다양한 소재로 압인식 방법에 의해 발행되었다. 경성 전환국 고종20년(1883)에 조폐기관인 전환국을 설치하여 상시로 주화를 주조하게 하였다. 이와같은 상설 조폐기관이 설립하게 된 가장 현실적이고 또 기본적인 동기는 극심한 궁핍에 빠진 국가재정상 급하게 필요되는 당오전을 될 수 있는대로 많이 또 속히 주조하여 조정에 공급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새로 설립된 전환국은 설립당시부터 다른 주전소와 함게 당오전을 주조하는데 열중하였다. 인천 전환국 고종29년(1892.5) 일본에서 수입되는 주화용 원료운반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인천으로 전환국을 이전하였으며 일본과의 신식화폐 주조방법의 협정에 따라 전환국은 설립초부터 일본의 강한 영향력을 받고 있었다. 요직을 일본인이 맡은 가운데 닷량은화와 한량은화‚ 두돈오푼 백동화‚ 오푼동화‚ 한푼동화 등이 발행되었다 용산 전환국 우리나라는 격증하는 화폐수요량에 대처하기 위하여 대일차관으로 인천전환국 확장을 시도하였는바 광무2년(1898) 8월 건축 및 기계증설 등 확장공사가 한창 진척되고 있을 무렵 고종황제의 명에 의하여 전화국을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광무 4년(1900)건축을 마치고 시운전을 거쳐‚ 광무 5년(1901)부터 본격적인 화폐제조를 시작하였다. 용산전환국에서는 러시아의영향을 받아 뒷면의 도안에 종래의 용(龍)의 문양을 변경하여 러시아 은화의 도식을 따라 독수리를 넣기로 결정하였다. 광무 5년(1901) 6월-9월까지 독수리 도안의 반원은화가 제조되어 궁정에 바쳐지기까지 하였으나 이는 발행되지 못하고 러‚일 전쟁중 일본 오사카(?阪)으로 보내져서 용해되어 새로운 화폐로 개조되었다. 그리고 독수리가 들어있는 주화에는 반원은화 이외에도 10원 금도금시주화가 광무 5년 3월에 약간 주조되었을 뿐이고 다음해 광무 6년의 각인을 가지고 20원 금도금 시주화‚ 5전 백동화‚ 1전 적동화 등 세가지 견양전(見樣錢)이 주조되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들도 발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전환국이 폐지된 후 광무 9년(1905) 금본위제도를 확립하고 이십원‚ 십원‚ 오원 등 금화 3종과 반원‚ 이십전‚ 십전 등의 은화와 오전 백동화‚ 일전‚ 반전동화를 일본 오사카(?阪)조폐국에 의뢰하여 제조하게 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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