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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청화초문각(白磁靑畵草文角)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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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백자청화초문각(白磁靑畵草文角)항아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순도 높은 순백의 기면(器面) 위에 코발트계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장석질과 석회석질의 유약을 그 위에 씌워 환원 소성(燒成)한 백자기로 풀과 꽃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 모양으로 생긴 것을 말한다. <일반사항 및 특징> 초기의 이름은 고청화(古靑華)이며‚ 청화백사기(靑華白沙器) 또는 청화백자 등으로도 불린다. 일반적으로 청화자기는 원(元)나라 중기에 시작‚ 징더전[景德鎭] 가마에서 대량 생산되어 유럽으로 수출되었으며‚ 명(明)나라 선덕연간(宣德年間:1426-1435) 및 성화연간(成化年間:1465-1487)에는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였고‚ 이후 청(?)나라 때까지 자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에 전래된 것은 14세기 말이며‚ 본격적으로 생산된 것은 15세기 중엽 이후이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시문양식(施文樣式)에서도 나타난다. 초기의 주요 무늬는 조선시대의 회화적인 무늬로 하고‚ 종속적인 무늬‚ 즉 접시 테두리와 항아리의 아가리 부분 및 어깨 부분의 무늬는 연꽃잎 무늬 등을 시문하다가 15세기 후반에 이르면 이러한 종속적인 무늬가 완전히 소멸되고 회화적인 무늬만이 남는다. 이 유물은 조선시대 중기 항아리의 잔영이 남아 있는 각호(角壺)로 목부분에는 발색이 흐린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한줄 횡선을 그리고 경사진 어깨부분에는 알 수 없는 나뭇잎을 그리고‚ 각이 진 몸체에는 칠보문(七寶文)을 성의 없이 그렸다. 유약은 담청을 머금은 회백색이며‚ 기면(器面)을 깎을 때 생긴 패인 흠이 군데군데 나 있다. 접지면의 유를 훑어내고 모래를 받쳐서 번조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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