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솜저고리

추천0 조회수 50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솜저고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액주음포(腋注音袍)는 남자용 포(袍)의 하나로 조선시대 초·중기에 착용되다 사라진다. 깃 형태는 곧은 깃이고‚ 칼깃이다. 소매는 두리소매이고‚ 겨드랑이 아래 무가 시작되는 곳에 주름이 잡혀 있다. 포(袍)는 바지·저고리 위에 입는 겉옷으로‚ 예의와 방한의 목적으로 입었다. 원래의 포(袍)는 착수의로 오늘날의 양복 외투와 비슷한 것이었는데‚ 차차 의례적인 것으로 되어 대수포가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국교로 삼아 예를 첫째로 삼았는데‚ 외출시에는 물론 평상시에도 관모를 쓰고 포를 입어 포의 착용은 사인(士人)의 전용물이 되다시피 하였다. 본 유물은 명주로 만든 액주음포이다. 벽진이씨의 유품으로‚ 그의 처(始) 문화유씨의 관(棺)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묘에서 나오는 철릭이나 액주음포등의 남자옷을 통해 과거에는 여성들도 이들 옷을 입었다 파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근에는 배우자의 옷을 넣어주는 장속(葬俗)의 하나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본 유물은 1988년 5월 26일 서울시 노원구 하계동의 도시건설 일환으로 벽진이씨(碧?李氏 1616-1666) 지원(志遠)과 그의 배(配: 부인) 문화유씨(文化柳氏 1617-1685)의 합장묘를 이장할 때 문화유씨의 묘에서 나온 보공품(補空品)이다. 1600년대 서울지역에 거주했던 종6품 현감가(縣監家)의 복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유씨의 관에서 나온 유물은 총 28점(点)인데‚ 이는 평상 의복류 16점과 시신(屍身)염습품(殮襲品) 10점‚ 관내(棺內)의 보공(補空)을 위한 것들 3점이다. 의복류 중에는 남성용으로 판단되는 포류(袍類) 3점이 있는데 천릭‚ 액주음포‚ 직령포이다. 유씨에 관련된 것 중‚ 의복은 포류 2점·저고리 6점·솜치마 4점·솜너른바지 1점이 있고‚ 염습품은 솜이불‚ 천금‚ 지요‚ 베개 각 1점 및 오낭(五囊) 가운데서 두발낭(頭髮囊)과 좌(左)·우수낭(右手囊)‚ 좌족랑(左足囊) 각 1점 외에 머리털을 모아 한지에 싼 것 1점‚ 교포(絞布) 조각들‚ 기타 관내(棺內) 보공용품으로 쓰였던 솜과 한지(닥지) 및 명주천들이다. 이 유물들의 출토 의의는‚ 수의(壽衣)품목 중에서 오낭 즉 다섯 개의 주머니를 만들어 각기 머리털과 손·발톱을 주머니에 넣고 제 위치에 맞게 넣는다는 것이 처음으로 정확하게 입증되었으며‚ 또한 남성의류가 여성의 묘에서‚ 여성의류가 남성의 묘에서 보공품으로 넣어져 출토되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본 유물은 문화유씨의 유물 중 남성용으로 판단되는 3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액주음포(腋注音袍)는‚ 겉은 아청(鴉靑)색이며 명주(明紬) 겹으로 되어 있고 깃모양은 가운데름은 좌우 모두 두 개 씩 달려 있는데 길이 21cm 너비 2.2cm‚ 1.8cm이다. 절개선이 들어간 칼깃이다. 겨드랑이에 3cm 너비의 사각형 당( )이 있다. 옆주름은 진동선에서 5.5cm 아래에 약 13cm 너비로 0.1cm의 좁은 주름이 잡혀져 있다. 옆솔기 아래 치마단 부분에서 앞자락은 32cm 뒷자락은 40cm 정도 길게 트여 있으며 매듭단추 하나가 전후(前後)를 연결시켜주고 있다. 앞 뒤 길이 차는 앞길이가 8cm 짧다. 옷고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