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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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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누비 창의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창의( 衣)는 조선시대 남자들이 착용한 포(袍)의 하나로‚ 허리 아래가 갈라진 옷을 통칭한다. 조선시대의 유물 중에는 숙종(肅宗) 이후의 출토(出土)의복(衣服)중에 창의가 많고‚ 조선 초기에 발굴된 유물 중에서는 창의를 볼 수가 없다. 문헌 기록에도 조선 중기 이후에 창의에 대한 내용이 있을 뿐이다. 영조대(英祖代)의 기록에 나타나는 창의 중 넓은 소매는 대창의(? 衣) 또는 중치막(中致莫)이라 하고‚ 좁은 소매는 소창의(小 衣)라 한다. 즉 창의는 옷의 어느 부분이 터져 있는 옷을 말하는 것으로‚ 무의 유무와 소매의 형태에 따라 대창의·중치막·소창의·학창의로 나눌 수 있다. 본 유물은 1987년 3월 13-14일에 동래정씨(東萊鄭氏) 사암공파(?庵公?) 종중에서 선대(先代) 다섯분의 묘를 이장하던 중 출토된 의복들로‚ 그 중 세분(男 2인‚ 여 1인)의 묘에서 유물이 나왔다. (양우(良佑) : 1574-1647‚ 남양홍씨(南陽?氏) : 1584-1654 良佑의 始‚ 태제(泰齊) : 1612-1669 良佑의 子) 그러나 파묘(破墓)와 이장(移葬)이 끝난 후에 박물관팀이 현장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유물이 시신에 입혀진 수의(壽衣)였는지‚ 아니면 보공품(補空品)으로 넣은 것인지 정확한 판별이 어려우며‚ 또한 출토유물이 어느 묘에서 나왔는지의 구별에도 어려움이 있다. 남자의 유물로는 59점이 출토되었다. 모자류(帽子類)·단령·흉배 각 1점‚ 도포·천릭 각 2점‚ 창의 7점‚ 중치막 21점‚ 직령포 4점‚ 배자 1점‚ 답호류 3점‚ 적삼과 저고리 5점‚ 바지류 9점‚ 부채 1점 등이다. 여자의 유물은 23점인데 직령포 7점‚ 적리 7점‚ 치마 7점‚ 바지·속옷 각 1점이다. 동래정씨의 출토유물 중 중요한 것은 금사(金絲)로 된 쌍학흉배(雙鶴胸背)가 출토된 것인데‚ 이는 출토유물로서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 창의는 설한초(雪寒 )를 겉으로‚ 명주를 안으로 하여 그 사이에솜을 두고 만들었다. 동정속에 종이심을 넣었으며‚ 창의의 특징인 트임이 뒤에 78cm정도 나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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